항목 ID | GC09100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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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Nakdong Ferry |
이칭/별칭 | 낙동진,낙정나루,관수진,낙정진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낙동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진원형 |
비정 지역 | 낙동나루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낙동리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낙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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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나루 |
관련 문헌 | 『경상도속찬지리지』|『경상도읍지』|『상산지』|『대동지지』|『여지도서』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낙동리와 의성군 단밀면 낙정리를 연결하던 낙동강 나루.
[명칭 유래]
낙동나루는 낙동강을 건너는 나루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낙동나루는 상주시 낙동면 낙동리와 낙동강 건너편 의성군 단밀면 낙정리를 연결하던 나루이다. 낙동진, 낙정나루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고려 시대 상주를 중심으로 선산, 예천, 문경 등지에 이르는 상주도(尙州道), 조선 시대 동래에서 한양으로 가는 영남대로의 유곡도(幽谷道)가 지나던 곳에 위치하였다. 따라서 낙정리에 있는 낙동역에서 낙동강을 건너 상주시 낙상동의 낙원역을 가려면 낙동나루를 이용하여야 하였다.
또한, 낙동나루는 고려 시대부터 낙동강 수로를 이용한 세곡선의 집결지이기도 하였으며, 남해에서 생산한 소금과 각종 해산물도 낙동나루에 모였다가 다른 지방으로 공급되는 등 관수 물자 운송과 민간의 물자 유통에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낙동강의 나루 중에서 가장 크고 번창하였던 나루였다.
일제 강점기와 광복 이후까지 생필품을 실은 장삿배의 왕래가 계속되었고, 평저선인 나룻배가 다녔으나 1986년 옛 낙동나루 자리에 총길이 434m, 총폭 10m의 낙단교(洛丹橋)가 가설되면서 나루의 기능은 막을 내렸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낙동나루는 상주시 낙동면 낙동리와 의성군 단밀면 낙정리를 연결하던 낙동강 나루이다. 상주 낙동리의 낙동나루가 있던 곳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이전 지명이 ‘진두(津頭)’였고, 의성 낙정리의 낙동나루가 있던 곳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이전 지명이 ‘낙동’이었다. 낙동리는 낙동나루가 있던 낙동강 대안의 2개 취락에 시기를 달리하면서 붙여진 명칭이다.
[관련 기록]
낙동나루는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에 ‘낙동진(洛東津)’이란 기록이 보이고,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의 「상주목읍지」에도 ‘낙동진’이 전한다. 『상산지(商山誌)』에는 ‘관수진(觀水津)’으로 전하고, 그 외 『대동지지(大東地志)』, 『여지도서(輿地圖書)』 등 많은 지리지에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