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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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以花里 |
영어공식명칭 | Ihwa-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이화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삼조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이화리(以花里)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이음리(以音里)의 ‘이(以)’ 자와 화봉리(花蜂里)의 ‘화(花)’ 자를 따서 ‘이화리’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이화리는 본래 상주군 공동면(功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수성동, 상이음리, 중이음리, 하이음리, 화봉리를 합하여 경상북도 상주군 공성면 이화리로 개설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 복합 형태의 시 설치에 따라 상주시와 상주군이 통합됨으로써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이화리로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이화리는 동쪽으로 백운산의 서쪽 산자락에 걸쳐 있다. 이화리에는 작은절터골, 쑥골, 철탑골, 큰절타골, 희골 등 크고 작은 골짜기가 있다. 골짜기 주변에 달분재들, 상보들, 하리들, 버들수들 등의 경작지[들]가 있다. 병성천 지류가 이화리를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관통하면서, 병성천 지류 일대와 골짜기에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다. 특히 계곡 논이 많다. 저수지[보]에는 하리소류지, 마루들보가 있다.
[현황]
2022년 12월 말 현재 이화리의 면적은 약 7㎢이며, 인구는 201가구, 383명[남자 183명, 여자 200명, 외국인 제외]이다. 이화리는 상주시의 남서쪽에 있으며, 동쪽으로 산현리, 서쪽으로 영오리, 거창리, 남쪽으로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 김천시 어모면 구례리, 북쪽으로 옥산리와 접하여 있다. 행정리는 이화1리, 이화2리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 마을에는 반월령, 상리, 신기(新基)[새터], 웃마, 원상리, 이음, 주막, 중리[얼음터, 중이음(中以音)], 하리[하이음], 화봉, 하현[원말] 등이 있다.
반월령은 하리 북서쪽, 화봉마을 북동쪽에 있다. 경북선 철도가 마을 동쪽으로 지나간다. 뒷산이 반달 모양이라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상리는 중리 위쪽에 있다. 신기[새터]는 반월령 동북쪽에 있으며 1913년 대홍수로 인하여 물길이 바뀌면서 생긴 땅에 사람들이 마을을 만들어 생겨난 이름이다. 웃마는 상리보다 더 위에 조성된 마을이다. 김천시 감문면 문수동 여무로 통하는 여뭇재가 있으며, 1915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원상리는 상리의 남동쪽에 있다. 이음은 이화리에서 가장 크다. 주막은 신기 북쪽에 있으며, 주막이 있어서 주막이라 불려졌다고 한다. 중리는 상리와 하리의 중간, 이화천[소리내]의 동쪽에 있다. 1890년경 권씨 학자가 중리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얼음터는 신라 시대 궁중에 보내던 빙고(氷庫)[얼음창고]가 있어 얼음터라 불렸다고 한다. 현재는 빙고가 없어지고 얼음터만 남아 있다고 한다. 하리는 이음의 가장 아래, 중리마을 북쪽과 하리못 남쪽에 있다. 원래는 진주 강씨 집성촌이었으나 1894년 동학농민군에 의하여 마을이 모두 불탔다고 한다. 화봉은 원말 남쪽에 있다. 풍수적으로 뒷산이 매화가 피어 있는 꽃봉오리 모양인 매화낙지(梅花落地) 형국이라 화봉이라 하였다고 한다. 하현은 반월령 북쪽, 상주시와 김천시 사이를 다니는 사람들을 위한 공성원(功城院)이 있던 마을이라 한다. 화봉의 아래에 있어서 하현이라 하였다.
이화리는 주로 논농사를 주로 짓지만, 면 소재지인 옥산에 인접한 마을이고 지방도 제997호가 마을을 관통하고 있기 때문에 농업 가공 시설이나 상업 시설 등이 세워지고 있다. 이화1리에는 공성문화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이화리의 문화유산에는 공성원(功城院) 터, 중리 절터 등이 있다. 경부선 철도가 서쪽 경계선으로, 국도 제3호가 서북쪽 경계선으로 지나간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지방도 제997호가 관통하여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