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5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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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印龜文 孝子閣 |
영어공식명칭 | Commemorative Pavilion of In Gumun for His Filial Devotion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지평리 산17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백지국 |
건립 시기/일시 | 1904년 - 인구문 효자각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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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78년 - 인구문 효자각 이건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870년 - 인구문 효자 정려 |
현 소재지 | 인구문 효자각 -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지평리 산17 |
원소재지 | 인구문 효자각 -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지평리 |
성격 | 비각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지평리에 있는 개항기 효자각.
[개설]
인구문 효자각(印龜文 孝子閣)은 인구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인구문의 본관은 교동(喬桐), 자는 자성(子成), 호는 영모재(永慕齋)이다. 인구문은 평소 정성을 다하여 부모를 봉양하였는데, 1756년(영조 32) 아버지가 사망하자 3년상을 치렀고, 1780년(정조 4) 어머니가 사망하자 역시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인구문의 효성으로 묘소 아래 샘물이 솟아오르고 범[虎]이 감동하여 묘소 옆에 와서 엎드렸다고 전한다. 인구문은 3년상을 마치고 묘소 아래 영모재를 지어 25년간 상복을 벗지 않았으며 1805년 사망하였다. 한편, 현감 이정형(李廷衡)이 쌀과 고기 등을 보내 주었다고 한다.
[위치]
인구문 효자각은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지평리 산17 경들마을에 있다. 경들마을은 조선 중기부터 함창 김씨와 교동 인씨가 정착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마을 앞에는 동서로 큰 들이 있었고, 북서쪽에는 지평저수지가 있다. 인구문 효자각은 지평저수지 남쪽 못 둑 동쪽 경들마을 입구에 있다. 근처에 김축 부자 충효각이 있다.
[변천]
1870년(고종 7) 조정에서 정문을 내렸고, 1904년 지금의 상주시 공검면 지평리 동쪽고개에 인구문 효자각을 건립하였다. 1978년 현재 위치인 경들마을 입구로 이건하였다.
[형태]
인구문 효자각은 남향이며 정면에 문을 두어 출입할 수 있다. 시멘트 블록을 둘렀고, 단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부 뒷벽에 ‘효자 학생 인구문지려(孝子 學生 印龜文之閣) 상지7년 경오 명려(上之七年 庚午命旌)’ 정려판과 기문이 걸려 있다.
[현황]
인구문 효자각의 건물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인구문 효자각은 근대까지 계승되어 온 정려 문화를 보여 주는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