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5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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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凰亭 |
영어공식명칭 | Bonghwangjeong Pavilion |
이칭/별칭 | 상주 금곡리 봉황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봉황로 374-3[금곡리 490]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찬영 |
건립 시기/일시 | 1550년 - 봉황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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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0년 - 봉황정 중건 |
현 소재지 | 봉황정 -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봉황로 374-3[금곡리 490] |
성격 | 누정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2칸 |
측면 칸수 | 2칸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금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누정.
[개설]
봉황정(鳳凰亭)은 조선 전기 교수(敎授)를 지낸 진주(晉州) 출신 류희임(柳希任)이 유상(遊賞)하던 정자이다. 현재 건물은 후손들이 류희임을 추모하여 1990년 새롭게 중건한 것이다. 정자 안 현판에는 전윤석(全胤錫)의 기문과 채휴징(蔡休徵)의 시가 남아 있다. 상주 금곡리 봉황정이라고도 부른다.
[위치]
봉황정은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봉황로 374-3[금곡리 490]에 있다. 함창읍과 문경시 영순면의 경계에 있는 절벽 위에 있어 남동향으로 이안천과 영강이 합수되는 곳을 바라볼 수 있다.
[변천]
봉황정은 1500년 처음 건립되었으나 멸실되었다가 1990년 후손들이 중건하였다. 전윤석이 쓴 「봉황정기」에 “정자는 3칸인데 당실헌창은 각각 그 규모가 맞으니 이름하여 봉황정이라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형태]
봉황정은 이안천 변의 절벽 위 좁은 터에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지은 소규모 정자이다. 정자가 절벽 위에 있어 마을 진입로에서 시멘트 계단을 오르면 출입문인 사주문이 나온다. 사주문은 나중에 새로 지은 것이고, 정자는 앞으로 넓은 툇마루를 두고 뒤로 구들방 2칸을 두었다. 시멘트로 마감한 기단 위 툇간에는 화강석 둥근주춧돌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본체에는 사각화강석 주춧돌에 네모기둥을 따로 세워 기둥 사이에 벽을 치고 창호를 달았다. 벽은 전통 흙벽에 회미장하였고, 방 전면의 출입문은 3짝의 들어 여는 분합문을 달아 필요시 방과 툇마루를 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방 측면에는 한짝문을 달았고, 문 밖에는 쪽마루를 두어 툇마루와 연결되도록 하였다. 기둥 위의 짜임새는 툇간과 본체에 차이를 두었다. 즉, 툇간에는 기둥 사이에 창방을 걸고 위에 처마도리 밑 장혀 사이에 소로를 끼웠다. 기둥머리에는 끝단을 직절하고 내부는 사절한 익공을 끼운 직절익공형식이고, 본체는 처마도리와 장혀로만 처마 하중을 받은 민도리 형식이다. 지붕 짜임새는 작은 집임에도 추녀와 부연을 단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다. 집 양측으로는 충량을 걸어 대들보와 직교하여 결구하였고, 충량 등 위에 추녀와 측면 서까래를 받는 외기중도리를 바로 얹어 받쳤다.
[현황]
봉황정은 지속적으로 관리하여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봉황정은 툇마루와 구들방을 앞뒤로 배열한 소규모 정자로, 주변의 아름다운 산천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전형적인 정자 형식을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