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6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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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尙州 石造天人像 |
영어공식명칭 | Stone Relief of Apsaras, Sangju |
이칭/별칭 | 상주 석각천인상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84[삼덕리 산18-7]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박병선 |
이전 시기/일시 | 1982년 - 상주 석조천인상 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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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2007년 6월 20일 - 상주 석조천인상 이전 |
문화유산 지정 일시 | 1980년 6월 11일 - 상주 석조천인상 보물 제661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상주 석조천인상 보물로 변경 지정 |
소장처 | 상주박물관 -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84[삼덕리 산18-7] |
원소재지 | 상주 석각천인상 - 경상북도 상주시 남성동 9-6 |
성격 | 천인상 |
양식 | 양각 |
크기(높이,길이,둘레) | 높이 1.27m, 폭 1.23m[주악천인상]|높이 1.23m, 폭 1.12m[공양천인상]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상주박물관 |
문화유산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삼덕리 상주박물관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천인상.
[개설]
상주 석조천인상(尙州 石造天人像)은 통일 신라 시대에 제작된 천인상으로 상주 석각천인상이라고도 한다. 1980년 6월 11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보물로 변경되었다.
[건립 경위]
상주 석조천인상 2구는 본래 경상북도 상주시 남성동 9-6 용화전(龍華殿)에 안치되어 있었다. 1880년 박인술이 쓴 「용화전 창건기(龍華殿創建記)」에 따르면 신라와 고려 시대 작은 암자인 만석사(曼碩寺)가 있었는데, 폐허가 된 후에 2구의 석불이 남쪽 뜰에 세워져 있었다. 폐허가 된 절터에 1칸의 전각을 짓고 용화전이라 하고 2구의 불상을 모셨다고 하였다. 그러나 1982년 상주 석조천인상의 보호 관리에 문제점이 발생하여 보호각 밖에 있던 연화대석(蓮花臺石)과 석탑재(石塔材) 등과 함께 상주시 신봉동 남산공원으로 옮겼으나 2007년 6월 20일 상주박물관으로 옮겼다.
[위치]
상주 석조천인상은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84[삼덕리 산18-7] 상주박물관 내 상설 전시실에 있다.
[형태]
상주 석조천인상은 공양천인상과 주악천인상으로 화강암 판석에 양각되어 있다. 공양천인상(供養天人像)은 높이 1.23m, 폭 1.12m이고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은 높이 1.27m, 폭 1.23m이다. 공양천인상은 오른손으로 연꽃봉오리를 받쳐 들고 오른쪽을 향하고 있는 모습이다. 상체를 약간 숙인 측면관(側面觀)[옆에서 바라본 모습]의 형태와 중심을 오른발에 두고 왼발을 뒤에 둔 자세 그리고 연꽃봉오리를 받쳐 든 오른손과 앞쪽으로 구부린 왼팔 등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의 모습이 매우 자연스럽고 동적으로 묘사되었다. 미소 어린 얼굴로 천의(天衣)를 휘날리며 하늘을 나는 듯한 생동감을 자아낸다. 머리에는 꽃으로 장식된 관을 썼고 이목구비는 작으나 매우 정제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악천인상은 비파를 연주하는 모습이다. 공양상을 마주보는 듯 왼쪽을 향한 측면관이며, 머리는 앞으로 숙이고 허리를 약간 뒤로 하여 한 발을 앞으로 내민 유연한 자세를 취하였다. 약간 미소를 머금은 단아한 표정과 비파를 타는 두 손의 사실적인 묘사, 그리고 바람에 나부끼는 듯한 통견(通肩) 형태의 천의는 연주하는 자태와 함께 매우 실감나고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상호(相好)는 미소가 어린 온화한 모습이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다. 특히 손가락의 정교한 묘사에 능숙한 조각술이 잘 드러나 있다.
[현황]
상주 석조천인상의 용도는 알 수 없으나, 석단의 기단석이나 석탑의 상층 기단면석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긴 세월 속에서 여러 번의 이동이 있었음에도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상주 석조천인상의 둥근 얼굴과 정제된 이목구비 표현, 손가락 등의 사실적인 묘사는 균형이 잡힌 몸매, 세련된 자태 등과 함께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또한 옷차림은 당시 복식(服飾)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