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0684
한자 尙州邑城址
영어공식명칭 Sangju eupseong Fortress
이칭/별칭 상주읍성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남성동|서문동|서성동|성하동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이창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385년연표보기 - 상주읍성 건립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9년 - 상주읍성지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21년 - 상주읍성지 발굴 조사
훼손 시기/일시 1912년연표보기 - 상주읍성 해체
현 소재지 상주읍성지 - 경상북도 상주시 남성동|서문동|서성동|성하동지도보기
성격 읍성
크기(높이,길이,둘레) 1,603m[둘레]
면적 171,598㎡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남성동·서문동·서성동·성하동 일대에 있었던 조선 시대 읍성 터.

[개설]

상주읍성지(尙州邑城址)는 조선 시대의 읍성 터로 상주읍성터라고도 한다. 경상북도 상주시 남성동·서문동·서성동·성하동 일대에 있으며 2차례 발굴 조사되었다.

[위치]

상주읍성지(尙州邑城址)경상북도 상주시 서성동 163-48번지에 있는 왕산역사공원을 중심으로 읍성이 있었다. 4대문의 동문[돈원문(敦元門), 공락문(控洛門)]은 성하동 1-1번지 일대, 서문[진상문(鎭商門), 읍로문(挹露門)]은 서성동 142-1번지 일대, 남문[홍치구루(弘治舊樓)]은 남성동 2-12번지 일대, 북문[현무문(玄武門)]은 서성동 81번지 일대에 있었다고 한다.

[형태]

일제 강점기의 지적도와 4대문 사진엽서를 보면, 상주읍성은 둘레 약 1,603m, 폭 7~10m, 남북 길이 약 511.2m, 동서 길이 약 397.9m의 장방형으로 모퉁이 네 곳은 둥글게 축성되었다. 성 밖으로는 해자를 둘렀는데, 체성(體城)과 해자(垓字)와의 평균 거리는 약 14~20m, 해자의 둘레는 약 1,721m, 해자의 폭은 4~4.5m 정도였고, 성 내부의 면적은 17만 1598㎡였다.

[변천]

상주읍성은 1380년(우왕 6) 8월의 왜구 침입으로 인하여 상주가 불탄 것을 계기로 1381년 축성을 시작하여 1385년 둘레 3,458척[1.04㎞](『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1,549척[0.46㎞]), 높이 9척 7촌[3m]인 석성으로 축성되었고, 군창과 작은 못 2개소, 샘 21개소가 있었다고 한다. 1591년(선조 24) 성곽을 증축하고 참호를 설치하였으며, 1592년 왜군이 왕산 정상을 헐어 뭉개고 층루(層樓)를 세웠고, 성의 둘레에는 10척[3.03m]이 넘는 호(壕)를 팠으며, 성밖의 서남쪽에는 토성을 쌓았다고 한다. 1794년 간행된 『상산읍례(商山邑例)』에는 성벽 둘레 3,883척[1.17㎞], 높이 9척[2.72m], 성가퀴 64, 성문 4개, 해자 둘레 4,645척[1.4㎞], 깊이 3척[0.9m], 너비 5척[1.5m], 연못 4개소, 우물 6개소라고 하였다. 1885년 여름 장마에 읍성이 무너지자 목사 민종렬이 전체 읍성의 23% 정도를 수축하였으며, 『상산지』를 통하여 당시의 규모를 보면 둘레가 1,549척[469m], 높이가 9척[2.72m]인데 성안에는 샘 21곳, 못 2곳이 있고, 성 밖에는 임진왜란 때 왜병이 판 호와 남서쪽에 쌓은 토성의 터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인 1912년 성첩(城堞)과 문루(門樓)가 모두 헐려 시가지와 도로가 만들어졌으며, 성 둘레의 호는 메워 미나리나 왕골을 재배하였다고 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상주읍성의 체계적인 정비와 복원 등을 위한 기초 자료를 확보하기 위하여 성벽 혹은 해자 말단부가 확인될 가능성이 있는 인봉동 73-7번지 일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상주박물관에 의하여 2019년 7월 29일부터 12월 6일까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조선 시대 해자 1기, 건물지 5기, 근현대 건물지 6기, 수로 1기, 배수로 1기, 수혈 1기, 주혈 2기가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조선 시대 분청사기 발, 백자 접시, 잔, 완, 기와 등 74점이다. 발굴 조사를 통하여 상주읍성 해자의 위치와 모습이 확인되었으며, 해자 출토 말목에 대한 연대 측정 결과[1489년~1604년] 해자의 축조 시기는 기록에 보이는 1591년임이 명확하다. 2021년 한국문화재재단에 의하여 근린 생활 시설 신축 부지인 인봉동 35-5번지에 대한 소규모 발굴 조사가 실시되어 상주읍성 북동쪽 성벽의 체성부 아래 기저부가 처음 확인되었다.

[현황]

상주읍성은 일제 강점기에 철저히 파괴되었으며, 일제 강점기의 지적도, 상주박물관의 4대문 사진엽서, 관련 문헌 연구 등을 통하여 읍성의 위치와 규모 등은 대략 파악되고 있다. 1991년 7월 상주문화원에서 일제 강점기의 지적도를 기반으로 4대문의 위치를 알리는 표석을 세웠다. 상주읍성의 실체를 찾기 위한 노력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상주읍성은 출토된 유구를 통하여 상주읍성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으며 향후 정비와 복원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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