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6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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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修善書堂 |
영어공식명칭 | Suseonseodang Village Study Hal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수선로 187[청하리 43]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백지국 |
건립 시기/일시 | 1552년 - 수선서당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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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603년 - 수선서당 이건 |
이전 시기/일시 | 1987년 - 수선서당 이건 |
현 소재지 | 수선서당 -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수선로 187[청하리 43] |
성격 | 서당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5칸 |
소유자 | 상주시 |
관리자 | 상주시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청하리에 있는 조선 전기 서당.
[개설]
수선서당(修善書堂)은 상주목사 신잠(申潛)[1491~1554]이 건립하였다. 신잠은 1552년(명종 7) 상주목사로 부임한 이후 상주 선비들이 학문을 할 곳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부임 기간 동안 상주 지역에 서당 18개를 건립하였다.
[위치]
수선서당은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수선로 187[청하리 43]에 있다. 청하리 하현마을은 상주시청에서 남서쪽 약 11㎞ 거리에 있고, 청하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수선서당은 청상저수지 서북쪽 큰 도로변에 있으며 앞으로 청하천이 흐른다.
[변천]
수선서당은 상주목사 신잠이 세운 18개 서당 중 하나로, 당시 상주의 속현인 청리현(靑理縣)에 건립하였다. 처음에는 수선산 아래에 서당을 세웠지만, 터가 좁아 서쪽 개울가로 옮겼다.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것을 1603년(선조 36) 철암(鐵岩) 아래로 옮겨 세웠다. 이전(李㙉)·이준(李埈) 등이 수선서당에서 강회를 열었고, 옥성서원(玉城書院)이 산사태로 매몰되었을 때 수선서당에 신주를 봉안하기도 하였다. 또한 류성룡(柳成龍)의 문집을 수선서당에서 교정하였다. 1987년 철암산 아래 저수지가 축조되면서 현재 자리로 이전하였다.
[형태]
수선서당은 정면 3칸, 측면 1.5칸의 팔작지붕 형태이다. 평면 구성은 가운데 대청을 깔고 오른쪽과 왼쪽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이다. 기단은 시멘트로 마감하였고, 앞면에 네모기둥을 세우고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벽체는 현재 시멘트로 마감되어 원형에서 변형되었다.
[현황]
수선서당은 여러 차례 이건하면서 원형에서 변형되었으나 건물의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수선서당은 조선 시대 상주목 청리현 사대부들이 향촌 사회 활동을 펼쳐 나가던 핵심 공간이다. 특히 수선서당에는 『서당록(書堂錄)』이 보존되어 있는데, 여러 기문(記文)을 비롯하여 「심원록」·「임원록」 등이 수록되어 있어, 수선서당의 연혁과 인적 구성을 살펴보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현재 관련 자료는 상주박물관에 보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