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7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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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絪 |
영어공식명칭 | Kang In |
이칭/별칭 | 인경(仁卿),시암(是庵),진창군(晉昌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채광수 |
[정의]
조선 후기 상주 출신의 문신.
[가계]
강인(姜絪)[1555~1634]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인경(仁卿), 호는 시암(是庵)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강영숙(姜永叔)이고, 할아버지는 의정부사인 강온(姜溫)이다. 아버지는 우의정 강사상(姜士尙)이고, 어머니는 훈련원부정 윤광운(尹光運)의 딸 파평 윤씨(坡平 尹氏)이다.
[활동 사항]
강인은 1555년(명종 10)에 태어났다. 1589년(선조 22) 생원시에 합격한 뒤 천거로 왕자사부에 제수되었고, 1593년 형조좌랑이 되었다. 이후 공조좌랑·영유현령·선천군수·배천군수를 역임하였고, 선천군수 재임 시에는 관개 시설을 정비하고 선정을 베풀어 지역민들이 강인을 ‘강공제(姜公堤)’라고 불렀다고 한다.
강인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여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녹훈되고 진창군(晉昌君)에 책봉되었다. 1605년 홍주목사를 거쳐 1609년 상주목사로 부임하였으며, 인목대비 폐모론 정청(庭請)에 참여하였다. 이 때문에 인조반정 이후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다가, 1625년(인조 3) 강릉부사로 재출사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 형조판서에 제수되었고, 회답사가 되어 적진을 내왕하며 비밀리에 적정을 탐색한 공으로 가자(加資)되었다. 1632년에는 한성부좌윤이 되었고, 1634년 사망하였다.
[묘소]
강인의 묘소는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107-2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