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7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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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裕 |
영어공식명칭 | Ko Yu |
이칭/별칭 | 순지(順之),추담(秋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조선 후기 상주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고유(高裕)[1722~1779]의 본관은 개성(開城)이며, 자는 순지(順之), 호는 추담(秋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고한익(高漢翊)이고, 할아버지는 고사석(高師錫)이다. 아버지는 고규서(高奎瑞)이고, 어머니는 김익남(金益南)의 딸 의성 김씨(義城 金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도사 전광제(全光濟)의 딸 용궁 전씨(龍宮 全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군수 김성흠(金聖欽)의 딸 순천 김씨(順天 金氏)이다. 아들은 고몽린(高夢麟)·고몽근(高夢根)이다.
[활동 사항]
고유는 1722년(경종 2) 지금의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 의곡리에서 태어났다. 1741년(영조 17)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743년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이후 승정원주서·숭릉별검·연원승을 거쳐 1748년 성균관전적이 되었다. 1749년 병조좌랑에 제수되었고, 1753년 경상도도사로 부임하였다. 1754년 다시 병조좌랑을 거쳐 직강을 역임하였고, 1757년에는 국왕의 특별 교지로 창녕현감에 제수되었다.
고유는 창녕현감으로 제임 중 거듭된 흉년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던 백성을 구휼하였고, 조창 제도를 개선하여 비용을 절약하고 소송을 공평히 하여 민생을 돌보았다. 1760년 창녕현감에서 이임할 때 창녕 지역민들이 거사비(去思碑)를 건립하여 고유의 선정을 칭송하였다.
고유는 1761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사직한 뒤 삼년상을 치렀고, 1764년(영조 40) 경기도도사를 거쳐 사간원정언·이조좌랑·사헌부장령·장악원정·군자감정 등을 역임하였다. 1773년 대신들의 추천으로 세자시강원필선이 되었고, 1776년 장원원정이 되었다가 12월에 사복시정으로서 영조실록청 낭청을 겸하였다. 1777년(정조 1) 동부승지를 역임하였고, 1778년 11월에 안주목사로 부임하였으나 1779년 큰아들이 사망하였다는 연락을 받고 귀향하던 중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고유의 저술로는 1895년(고종 32) 목판으로 간행된 시문집인 『추담집(秋潭集)』이 있다.
[묘소]
고유의 묘소는 문경시 산북면 회룡리에 있다. 행장은 정정로(鄭宗魯)가 지었으며, 형조판서 정범조(丁範祖)가 묘갈명을 지었다.
[상훈과 추모]
고유는 1796년 청백리에 녹선되었고, 1844년(헌종 10) 문경시 산양면 녹문리에 있는 개성 고씨 사당인 죽곡사(竹谷祠)에 고윤종(高胤宗)·고흥운(高興雲)·고인계(高仁繼)와 함께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