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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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相中 |
영어공식명칭 | Kwon Sang-joong |
이칭/별칭 | 권석출(權石出),윤집(閏集)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개항기 경상북도 상주 출신의 의병.
[가계]
권상중(權相中)[1882~1929]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어렸을 때 이름은 권석출(權石出), 자는 윤집(閏集)이다. 아버지는 권복규(權福奎)이며, 어머니는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다. 본적지가 상주이다.
[활동 사항]
권상중은 1882년 12년 1일 경상북도 청송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항일 의병 운동에 투신하여 1906년 경상북도 영천군 신촌면 정각동 전투에 가담하였다. 정각동 전투에서 의병 부대의 의병장이 전사하자, 새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1907년 정미칠조약 체결 후 군대 해산이 강행되고 의병 전쟁이 전국으로 확산하였다. 이에 청송 일대를 중심으로 모병 및 군자금 모금 활동에 주력하였다.
권상중은 1908년 의병장 임용상(林龍相)과 합류하였으며, 동지 서주일(徐柱日) 등 수십 명을 이끌고 군자금 모금 활동을 펼쳤다. 1908년에는 청송군 현서면 감음리 일대에서 일본군과 접전하였다. 1909년 11월 25일 임용상·송남면(宋南面)과 함께 청송군 현남면 약곡동의 윤덕동(尹德洞) 집에 들어가 윤덕동의 왼쪽 사타구니에 자상을 입히고 약간의 군자금을 탈취하였다. 그 뒤 청송군 안덕면 일대에서 적과 접전 중 붙잡혔으나 수비병 2명을 죽이고 도피·은신하였다.
권상중은 1910년 체포되어 7월 25일 대구지방재판소 형사부에서 징역 7년을 언도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대구공소원에 항소하였으나 기각되었다. 1913년 1월 14일 칙령 제23호에 의하여 징역 5년으로 감형되었다가, 1915년 출옥하였다. 권상중은 1929년 1월 27일 사망하였다.
[묘소]
권상중의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권상중의 공적을 기려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