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9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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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盛德 |
영어공식명칭 | Kim Seong-deok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한준호 |
출생 시기/일시 | 1897년 12월 21일 - 김성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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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19년 - 김성덕 경성고등보통학교 수학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6월 30일 - 김성덕 독립 의식 고취 문서 배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8월 21일 - 김성덕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3년형 언도 |
몰년 시기/일시 | 1949년 10월 25일 - 김성덕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8년 8월 15일 - 김성덕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만산동 - 경상북도 상주시 만산동 |
학교|수학지 | 경성고등보통학교 -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5길 48[화동 2]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성덕(金盛德)[1897~1949]은 1897년 12월 21일 경상북도 상주시 만산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6월 30일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 학생으로서 독립 의식을 고취하는 문서를 배포하였다. 당시 김성덕은 서울 종로구 사간동의 김만심(金萬心) 집에 거주하였는데, 상주 출신의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 4학년생 장재관(張在瓘)도 같은 집에 살았다. 장재관은 6월 30일 신원 미상의 사람으로부터 ‘대한민국민회’ 명의의 문서 80매를 받았다.
장재관이 받은 문서 「강화회의 조인 축하문」은 “우리 2천만의 조선인은 이번 강화조약의 성립을 축하하며 아울러 국제연맹의 발현을 희망한다. 저번 우리 동포가 조선의 독립을 선언한 결과 다른 나라로부터 동정을 얻어 점차 이에 조선의 부활을 보고 위원 김규식(金奎植)이 국제연맹에서 발언권을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들은 위의 연맹회의에 참석하는 위원 여러분들이 정의·인도를 근거로 약소국의 문제일지라도 공평하게 해결할 것을 희망한다”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장재관은 30매를 사간동에 배포하고, 김성덕에게 20여 매를 주었다.
김성덕은 받은 문서를 종로구 인사동의 민가와 관훈동에 있는 관훈여관(寬勳旅館)에 배포하였다. 문서 배포 건으로 김성덕과 장재관은 붙잡혔으며, 1919년 7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 형을 선고받았다. 8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3년 형이 확정되었다.
김성덕은 1949년 10월 25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성덕의 공적을 기려 2018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