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9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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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榮伊 |
영어공식명칭 | Kim Yeong-i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덕천 |
출생 시기/일시 | 1924년 7월 2일 - 김영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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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44년 11월 - 김영이 중국군 제4군단 유격대 가담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4월 - 김영이 한국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 입대 |
몰년 시기/일시 | 1945년 6월 15일 - 김영이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12월 26일 - 김영이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오동리 -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오동리 588 |
활동지 | 중국 - 중국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한국광복군 공작 요원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김영이(金榮伊)[1924~1945]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아버지는 김동호(金同浩)이며, 어머니 성술이(成述伊)이다.
[활동 사항]
김영이는 1924년 7월 2일 경상북도 상주군 함창면 오동리[현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오동리 588]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1940년대 초반 일본군에 강제 징병되어 1944년 중국에 주둔하여 있던 일본군 창(槍) 부대에 소속되었다. 1944년 11월 김영이는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 부근으로 행군하던 도중 탈출하였다. 김영이는 한국광복군과 곧바로 연결되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먼저 중국군에 가담하였다. 김영이가 가담한 중국군은 제4군단 유격대였으며, 김영이는 중국군을 도와 일본군과 싸웠다. 당시 중국군은 한국광복군과 연합 활동을 벌였다. 이 때문에 김영이가 중국군을 통하여 한국광복군과 연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영이는 1945년 4월 후난성 구이둥[桂東]에서 한국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에 입대하였다. 제3구대 밑에는 분대 조직이 있었다. 김영이는 구이둥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중국 장시성[江西省] 이춘[宜春]에서 편성된 제2·3분대에서 활동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제2·3분대에서 30여 명의 공작 요원을 선발하여 전방으로 파견하였을 때 김영이가 그 가운데 속하여 있었다. 김영이를 포함한 공작 요원들은 후난성 일대의 중국군 제9전구에서 공을 세웠다.
김영이는 행방불명되었다가, 1945년 6월 15일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을 뿐 구체적 사망 경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영이의 공적을 기려 1977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