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9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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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允璜 |
영어공식명칭 | Kim Yoon-hwang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개항기 경상북도 상주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김윤황(金允璜)[1886~1908]은 1886년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태어났다. 1903년 9월경 김문진(金問辰), 김곤이(金坤伊), 김향군(金香君), 소춘화(蘇春和) 등과 함께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팔조령(八助嶺)에서 일본인 이노우에 슌타로[井上俊太郞]의 총과 칼, 그리고 소지품을 탈취한 뒤 살해하였다. 1904년 6월 탁영조(卓永祚), 이모(李某), 천생이(千生伊) 등과 함께 자인군(慈仁郡)의 김경무(金卿武)에게 군자금 600원, 1906년 10월 탁영주 등과 함께 하양군(河陽郡)에서 군수를 협박하여 군자금 450원, 1906년 5월에는 여두명(呂斗明), 이도신(李道信) 등과 함께 경주군(慶州郡) 원곡면(垣谷面) 북동(北洞)에서 동민으로부터 군자금 280원을 모집하였다.
김윤황은 1908년 3월 13일에는 이봉상(李鳳祥), 남방우(南方祐), 이봉우(李鳳祐), 이남산(李南山) 등과 함께 경주군(慶州郡) 둔굴동(屯窟洞)의 권진사 아들을 납치하여 군자금 300원을 받았고, 4월 16일 이해문(李海文) 등과 함께 신녕군(新寧郡)의 김천서(金千瑞)로부터 군자금 100원을 모집하였다.
그러나 김윤황은 1908년 10월 9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소위 강도·살인죄로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공소하였으나 1908년 10월 31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자 다시 상고하였다. 1908년 12월 2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교수형을 받고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윤황의 공적을 기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