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9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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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益煥 |
영어공식명칭 | Seong Ik-hwan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덕천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성익환(成益煥)[1925~1981]은 경상북도 상주군에서 태어났다. 다만, 일부 자료에서 성익환의 출생지를 ‘서울 종로’, 본적을 ‘경성부 삼청동(三淸洞)’ 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성익환이 훗날 경기도 경성부로 이주하였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형은 독립유공자로 포상받은 성창환(成昌煥)이다.
[활동 사항]
성익환은 1925년 2월 25일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태어났다. 1930년대 후반 경기도 경성부에서 경복중학교[현 경복고등학교]를 다녔다. 1941년 경성광산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942년 4월 5일 경성부 봉래동(蓬萊洞)에 있던 주낙원(朱樂元)의 집에서 성익환을 비롯한 이현상(李賢相)·장의찬(張宜燦)·명의택(明義宅) 등이 모여 비밀결사 흑백당(黑白黨)을 조직하였다.
성익환은 흑백당이라는 당명을 제안하였고, 주낙원과 함께 섭외·조직책을 맡았다. 또한 전단 살포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맡았다. 전단은 민족 독립이 가까워 온다는 것과 학도병을 거부하라는 것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무렵 흑백당은 경성부의 일본인 거주지에 방화할 계획을 세웠으며, 민족 반역자를 처단하기 위하여 경복중학교 무기고에서 소총과 총검을 탈취하였다.
그러나 1943년 10월 무렵 당원 김창흠(金昌欽)이 괴산경찰서에 붙잡히며 흑백당의 전모가 드러났다. 소식을 접한 흑백당 당원들은 한국광복군에 참가하기 위하여 중국 충칭[重慶]으로 떠나기로 하였다. 1943년 11월 초부터 한두 명씩 국내를 빠져나갔다. 그러나 1944년 2월 무렵까지 중국 베이징[北京]과 중국 동북 지역 등에서 흑백당 당원 전부가 일제에 붙잡혔다. 성익환도 베이징에서 붙잡혀 국내로 압송되었다. 성익환은 1944년 12월 6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5년·장기 7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2월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성익환은 1981년 8월 1일 사망하였다.
[묘소]
성익환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2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성익환의 공적을 기려 1977년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