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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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乭石 |
영어공식명칭 | Shin Dol-seok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71년경 - 신돌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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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11월 - 신돌석 조운식의진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4년 5월 24일 - 신돌석 경성복심법원에서 강도죄로 5년 11월 19일 형 선고 |
추모 시기/일시 | 2018년 8월 15일 - 신돌석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화북면 -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
성격 | 의병 |
성별 | 남성 |
[정의]
개항기 경상북도 상주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신돌석(申乭石)[1871~?]은 1871년경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에서 태어났다. 영해 출신의 의병장 신돌석(申乭石)[1878~1908]과는 동명이인이다. 1907년 음력 11월 같은 화북면 출신의 의병장 조운식(趙雲植)이 이끄는 조운식의진에 참여하였다. 1907년 11월 20일경 민한식(閔漢植), 곽준희(郭駿熙), 임해준(任海俊), 이향운(李向云) 외 3명과 함께 충청북도 옥천군 이내면 기탄리의 이시근(李始根)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민한식 외 3명과 함께 같은 면 다른 동에 사는 이 과부(李 寡婦)에게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동면(東面) 삼정리(三丁里)에 사는 최용호(崔龍浩)에게서도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신돌석은 1908년 음력 5월 20일경 민한식, 곽준희, 이향운 등과 함께 옥천군 이내면의 곽용재(郭龍載)로부터 군자금 80원을 모집하였고, 1908년 음력 11월 24일 민한식, 곽준희 등과 함께 옥천군 이남면 적령리(赤嶺里)의 김동시(金東始)에게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또한 이남면 소도리(所道里)의 김동욱(金東旭)에게서도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신돌석은 이후 체포되어 1909년 5월 8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09년 6월 16일 기각되었다. 1914년 5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칙령 제104호에 의거하여 징역 5년 11월 19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신돌석의 공적을 기려 201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