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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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學鎭 |
영어공식명칭 | Jung Hak-jjn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출생 시기/일시 | 1912년 7월 25일 - 정학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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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31년 - 정학진 대구공립상업학교 재학 |
수학 시기/일시 | 1932년 - 정학진 대구공립상업학교 5학년 재학 중 퇴학 |
활동 시기/일시 | 1931년 - 정학진 프롤레라타리아과학연구소 조선 제1지국 가입 |
활동 시기/일시 | 1932년 12월 2일 - 정학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4년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68년 10월 25일 - 정학진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7년 8월 15일 - 정학진 건국포장 추서 |
출생지 | 서성동 - 경상북도 상주시 서성동 |
거주|이주지 | 수창동 - 대구광역시 수창동 |
학교|수학지 | 대구공립상업학교 -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배로 241 |
활동지 | 프롤레라타리아과학연구소 조선 제1지국 - 대구광역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프롤레라타리아과학연구소 조선 제1지국 공장서클 책임자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정학진(鄭學鎭)[1912~1968]은 1912년 7월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서성동에서 태어났다. 정학진은 1931년 4월 대구공립상업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 재학 중, 1930년 6월 체육 교사의 조선인 학생에 대한 잘못된 체벌로 발생한 사안에 대하여 “해당 교사의 파면, 조선인에 대한 차별 반대” 등을 내걸고 동맹 휴교 투쟁을 시도하였다.
1931년 10월 정학진은 서상조(徐相祚)의 권유로 대구공립상업학교의 비밀결사 ‘프롤레타리아과학연구소 조선 제1지국’에 가입하였다. 프롤레타리아과학연구소 조선 제1지국은 사유 재산 제도를 부인하고 사회주의 사회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였다. 또한 일본 도쿄[東京] 프롤레타리아과학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프롤레타리아과학』에 의하여 사회주의 연구와 보급을 도모하였다. 정학진은 “조선 운동의 노선은 기존의 유식 계급 중심에서 근로 대중과 학생 대중으로 전환하여 소작 쟁의와 파업, 동맹 휴교를 통하여 모든 것을 사회화시켜야 한다”는 프롤레타리아과학연구소 조선 제1지국의 노선에 뜻을 함께하였다.
정학진은 프롤레타리아과학연구소 조선 제1지국의 서상조·권태우(權泰禹)·사사키 다카시[佐佐木隆]·서오룡(徐五龍) 등과 함께 대구 시내 각처에서 독서회 또는 지국원 회의를 열고 사회주의 연구와 결사의 확대의 강화를 위하여 노력하였다. 또한 프롤레타리아과학연구소 조선 제1지국의 조직 가운데 공장 서클의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과학연구소 조선 제1지국은 이동우(李東雨) 등이 보병 80연대와 대구 각처에 뿌린 격문 투쟁이 빌미가 되어 일제에 의하여 조직이 무너졌다.
정학진은 대구공립상업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1932년 2월 5일 프롤레타리아과학연구소 조선 제1지국 활동으로 인하여 퇴학당하였다. 당시 정학진은 대구의 팔운정[현 수창동]에서 살았다. 정학진은 1932년 12월 2일 대구지방법원 형사부 재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정학진은 1968년 10월 25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정학진의 공적을 기려 2007년 8월 15일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