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1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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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尙州 興巖書院 |
영어공식명칭 | Heungamseowon Confucian Academy, Sangju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연원1길 34[연원동 76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유기선 |
건립 시기/일시 | 1702년 - 상주 흥암서원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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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5년 - 상주 흥암서원 중수 |
문화유산 지정 일시 | 1985년 10월 15일 - 상주 흥암서원 경상북도 기념물 제61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상주 흥암서원 경상북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상주 흥암서원 - 경상북도 상주시 연원1길 34[연원동 769] |
성격 | 서원 |
양식 | 맞배지붕[흥암사]|팔작지붕[진수당]|맞배지붕[어필비각] |
정면 칸수 | 3칸[흥암사]|5칸[진수당]|1칸[어필비각] |
측면 칸수 | 3칸[흥암사]|3칸[진수당]|1칸[어필비각] |
소유자 | 흥충보존위원회 |
관리자 | 흥충보존위원회 |
문화유산 지정 번호 | 경상북도 기념물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연원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개설]
상주 흥암서원(尙州 興巖書院)은 송준길(宋浚吉)[1606~1672]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702년(숙종 28) 처음 건립하였다.
송준길은 본관이 은진(恩津),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이다. 문묘에 배향된 해동 18현(海東十八賢)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이이(李珥), 김장생(金長生), 김집(金集)’으로 이어지는 기호학맥을 이은 학자이다. 조선 후기 경상북도 상주 지역에서 기호학맥을 계승한 서인·노론계 인사들은 상주 흥암서원을 중심으로 결집하였다. 상주 흥암서원은 1985년 10월 15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6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경상북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위치]
상주 흥암서원은 경상북도 상주시 연원1길 34[연원동 769]에 있다. 상주시청에서 서북쪽 약 3㎞ 거리에 있는 연원동에 있다. 연원교를 건너 마을로 들어서면 서쪽 산 아래에서 북천을 바라보고 있다. 상주 흥암서원에서 북쪽으로 충신의사단비(忠臣義士壇碑)와 현충단(顯忠壇)이 있다.
[변천]
상주 흥암서원은 17세기 중반 이후 정치·사회적 이해관계에 따라 퇴계학맥과 남인이 주류를 이루던 영남 지역에서 기호학맥을 계승한 서인·노론계 인사들이 배출되었다. 그런 가운데 17세기 후반부터 서인·노론계 서원이 출현하기 시작하였고, 1702년 상주 지역에 송준길을 제향하는 상주 흥암서원이 건립되었으며, 1705년 ‘흥암(興巖)’으로 사액(賜額)되었다. 상주 흥암서원은 영남에서 최초로 건립된 서인·노론계 사액 서원이 되었으며, 왕으로부터 친필 편액을 받았다. 이에 호응하여 성이홍(成爾鴻)·채징휴(蔡徵休) 등 원유(院儒)들이 어필비(御筆碑)를 건립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 때도 상주 흥암서원은 철폐되지 않았다. 이후 상주 흥암서원은 근대 학교로 활용되어 상주고등학교와 남산중학교가 발족하였으나 현재는 이건하였다. 2005년 유교문화권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중수하였다.
[형태]
상주 흥암서원의 건물로는 흥암사(興巖祠)·진수당(進修堂)·진의재(進義齋)·의인재(依仁齋)·어필비각·내삼문 등이 있다. 흥암사는 향사(享祀)를 지내는 사우(祠宇)로 송준길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강당인 진수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중앙은 마루를 깔고, 좌우에 협실(夾室)을 설치하였다. 동재(東齋)인 진의재와 서재(西齋)인 의인재는 유생들이 거처하던 곳이며, 어필비각(御筆碑閣)은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상주 흥암서원의 전체적인 구성은 정면에 강학 공간을 두고, 뒤에 향사 공간을 배치한 전형적인 전학후묘 양식이다.
[현황]
상주 흥암서원은 매년 음력 3월과 9월 상정일(上丁日)에 향사를 지낸다.
[의의와 평가]
상주 흥암서원은 영남 지역에 세워진 최초의 서인계 서원이자 사액 서원으로 조선 후기 상주 지역 사회의 동향을 살펴보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