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2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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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Tug-of-war Game in Sangju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기원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일제 강점기 무렵까지 행하여졌던 대규모의 민속놀이.
[개설]
상주 큰줄당기기는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 지역에서 일제 강점기 이전까지 이루어진 큰 규모의 고을 줄다리기이다. 당기는 줄의 규모가 크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큰줄당기기’라 불렸고, 마을 단위로 열리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줄다리기는 ‘애기줄당기기’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상주 큰줄당기기를 한 것이 1920년대 무렵일 정도로 오래전에 전승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과거의 큰줄당기기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연원]
상주 큰줄당기기의 연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전국에 분포한 민속놀이인 줄다리기에 관한 문헌 기록으로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최초로 등장하는데, 줄다리기는 훨씬 이전부터 널리 행하여졌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줄다리기는 주로 중부 이남 지역에서 많이 하였는데,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충주 지역,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충청도·경기도·제주도 등지의 줄다리기 풍속이 기록되어 있다.
[놀이 방법 및 절차]
상주 큰줄당기기는 상주 지역의 유력자들이 주도하여 5년을 주기로 행하였다. 놀이 규모가 크지만 개최 여부의 결정 방식이나 관련 조직에 대하여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줄도감’이라고 부르는 지역 유지인 총책임자가 장정들을 통솔하여 줄을 만들고 제반 준비를 맡았다고 전한다. 이처럼 줄도감의 주도로 상주 읍내 4개 마을과 읍의 동·서 마을이 동부와 서부로 편을 나누고 동부가 암줄, 서부가 수줄을 맡아 줄을 당겼다고 한다. 놀이 날짜는 정월 스무날을 전후하여 길한 날을 택일하였다.
놀이의 실행이 결정되면 먼저 줄을 만드는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상주 큰줄당기기에 사용하는 줄은 길이 100m, 둘레는 어른 두 명이 팔로 안을 정도의 크기였다. 이처럼 굵고 긴 줄을 만들려면 짚을 많이 모아야 한다. 읍내에서 ‘큰줄’을 당기기로 결정하면 동부와 서부의 줄도감과 장정들이 풍물패와 함께 마을을 돌며 짚단과 자금을 모았다. 걸립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짚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이렇게 모은 짚으로 줄을 만드는데, 규모가 커서 여러 단계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 단계는 짚을 모아서 새끼줄을 꼬는 것이다. 큰 나무에 소달구지 바퀴를 매달아서 새끼줄을 여러 가닥 만든다. 이렇게 만든 줄은 동네 줄다리기에 쓸 정도의 굵기이다. 두 번째 단계는 ‘큰줄’을 만드는 과정이다. 앞서 만든 새끼줄 여러 가닥을 늘어놓고 그 사이에 짚단을 넣고서 한데 묶어서 큰줄을 만든다. 이때 줄을 튼튼하게 하고자 몽둥이로 때린다. 세 번째 단계는 암줄과 수줄을 연결하는 줄대가리를 만드는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장정들이 큰줄을 당길 수 있도록 큰줄에 손잡이인 종줄을 1~2m 간격으로 연결한다. 줄을 당기기 3일 내지 4일 전에 줄이 다 만들어지는데, 상대편이 줄을 훼손하거나 여자가 근처에 오면 재수가 없다고 여겨 장정들이 돌아가면서 줄을 지킨다.
실제 놀이는 읍내 동쪽의 시냇가 근처에서 이루어졌다. 줄을 당기는 당일에는 동부와 서부에서 각기 줄도감을 중심으로 제사상을 차려 풍년과 줄당기기의 승리를 염원하며 고사를 지냈다. 고사를 마치면 우마차에 줄을 싣고 줄을 당기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풍물패는 줄을 옮기는 행렬을 따라서 군중을 모으고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하였다. 동부와 서부 양편은 줄을 당기기 전에 각종 깃발을 동원하여 경쟁하듯 위세를 뽐냈다. 기싸움이 끝나면 줄을 당겼다. 암줄과 수줄이 맞붙는 가운데 쪽에는 힘세고 건장한 청년들이 종줄을 붙잡고, 뒤쪽에는 부녀자와 아이들이 모래벌판에서 모래와 돌을 치마나 바지에 넣어 끌려 가지 않으려고 애썼다. 양편에서 서로 이기려는 열의가 강하여 심한 몸싸움과 말싸움이 벌어지고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오후에 시작된 줄다리기는 해 질 녘이 되어서야 끝났다고 한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승부와 관계없이 양편이 서로 승리를 주장하면서 열을 올리고 풍물을 치면서 뒤풀이를 하였다. 줄다리기에 쓴 줄은 소먹이꾼들에게 팔아 경비로 보탰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상주 큰줄당기기는 1920년대 이전에 전승이 중단되었고 과거의 모습을 기억하는 지역민도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알기는 어렵다. 다만 한 고을에서 많은 사람이 참여하여 이루어진 유사한 형태의 다른 지역 대동놀이인 영산줄다리기, 울산 마두희 등의 사례를 통하여 ‘상주 큰줄당기기’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과거에 조사된 내용에 따르면 ‘상주 큰줄당기기’는 옛 상주 지역 읍치를 중심으로 행하여졌고, 고을을 대표하는 줄다리기였다. 특히 줄도감이라 불리는 읍내의 유력자가 주도하고 읍내의 주민과 인근 마을의 주민들이 주축이 되었다는 점은 고을 축제로서의 성격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