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1308
한자 婚禮
영어공식명칭 Wedding Rites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기원

[정의]

경상북도 상주 지역에서 부부가 혼인 관계를 사회적으로 공인받고자 행하는 의례와 절차.

[개설]

혼례는 혼인 관계를 공식화하는 일생 의례이다. 혼인은 두 사람의 경제적·성적 결합을 넘어서 두 동족 집단이 인척의 관계를 맺는 중요한 행위이다. 전통사회에서 혼례는 남녀가 독립된 성인임을 인정받는 조건으로 중요시되어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 불렸다.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행하여지는 혼례는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여기서는 전통 혼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연원과 변천]

전통 혼례라고 일컬어지는 혼례의 형태는 고려 시대에 이미 주자의 『가례(家禮)』를 수용하면서 행하여지고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형식을 갖추고 체계화된 시기는 조선 시대부터이다. 특히 유교의 영향을 받은 이러한 혼례가 일반 서민에게까지 확산된 것은 조선 후기이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을 지나면서, 근대적인 신식 결혼이 대세를 이루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이후로는 혼례라고 하면 으레 예식장에서 주례의 주관하에 진행되는 예식을 떠올리게 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주례가 없는 결혼식, 소규모 결혼식 등 다양한 형태의 결혼식이 나타나고 있다. 상주 지역에서도 1970년대까지는 전통 혼례에 따른 결혼식을 찾아보기 어렵지 않았으나, 1980년대 이후로는 현대식 결혼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전통 혼례의 첫 절차: 의혼, 잡채, 연길, 납폐]

상주 지역의 전통 혼례는 먼저 의혼(議婚)으로 시작한다. 전통사회에서 혼인은 남녀 개인 간의 만남이 아닌 가문 간의 결합이라는 성격이 더욱 두드러졌다. 따라서 신랑과 신부의 의사보다는 부모, 곧 두 집안 가장의 합의하에 혼인이 결정되었다. 이렇게 양가 부모가 혼사를 논의하고 성사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의혼이라고 한다. 의혼 과정에서 신랑 신부의 양 집안은 사회적·경제적 배경과 조건을 고려하는데 상주 지역에서는 1950년대 이전까지 노론, 남인 등 가문의 당색이 혼인의 조건으로 고려되기도 하였다.

양가 어른의 논의로 혼인이 결정되면 신랑 집에서는 신붓집에 사성(四星)을 보낸다. 이를 ‘납채(納采)’라고 한다. 사성은 신랑의 생년월일을 적은 종이인데, 글씨를 잘 쓰는 신랑 집안 어른이 써 준다. 사성은 종이 사이에 청실, 홍실을 감은 수숫대를 넣은 뒤 문종이로 만든 봉투에 담는다. 사성을 담은 봉투는 다시 청홍색 보자기로 싸는데, 홍색이 바깥에 보이도록 한다

납채가 이루어지면 신부 측에서 신랑의 생년월일로 사주를 본다. 신부의 집안은 사주를 바탕으로 길한 날을 보고 혼인날을 정한다. 이렇게 정한 혼인날을 써서 신랑 측에 보내는데 이를 ‘연길(涓吉)’이라고 한다. 연길을 정하는 것은 신부 집안이지만 최종적인 결정은 신랑 집안에서 한다. 그래서 신랑 집에서 연길을 다시 보낼 때 함에 넣어 주기도 한다.

혼사가 정하여지면 신랑 집안에서 신부가 시집올 때 필요한 물품이나 옷감 등을 보낸다. 이를 ‘상답’이라고 한다. 신랑 집의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다면 신부가 일평생 시집에서 쓸 물건의 목록을 편지에 적어 보낸다. 목록 중에 신부가 시집에서 쓸 기물은 시댁에서 정하여 놓은 신부 방에 마련하여 놓고, 기타 옷감과 물품은 따로 담아서 보낸다.

‘납폐(納幣)’는 신부가 행례를 하면서 입을 옷감을 신랑 집안에서 보내는 것이다. ‘함’이라고도 한다. 함은 혼례 1~2달 전에 미리 보내는 경우도 있고, 초례 당일에 초행 오는 신랑 일꾼이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함이 신붓집으로 들어오면 삽짝거리[대문]에 놓은 짚단에 불을 놓아서 함을 들고 오는 이가 발로 불을 차고 오게 한다. 신붓집에 함이 도착하게 되면 동네 사람이나 친척 중에 첫아들을 낳은 사람이 받아 준다.

[대례: 초행, 전안례, 교배례와 합근례]

그다음 단계는 대례(大禮)인데, 이는 초행(初行), 전안례(奠鴈禮), 교배례(交拜禮)·합근례(合巹禮)로 나누어진다.

초행은 신랑이 혼례를 치르려고 신붓집으로 가는 것을 일컫는다. 신랑은 초행을 나서기 전에 사당에 들러서 조상에게 혼인을 고한다. 집을 나선 신랑은 가마를 타고 가는데, 1950년대~1960년대에는 버스를 타거나 자전거를 빌려서 타고 갔다. 초행길에는 신랑의 아버지나 백부, 형이 상객으로 따라간다. 사모관대, 목기러기, 홀기(笏記) 등 혼례에 필요한 물품은 신랑 집안의 일꾼이나 신랑 측 마을 사람이 들고 간다. 신랑과 일행이 신붓집에 도착하면 신붓집 처남이나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사모관대를 착용한다. 혼례의 진행 순서를 적어 놓은 홀기는 신부 집안의 어른이 읽는다.

전안례는 실제 혼례의 첫 절차로, 신랑 측이 신부 측에 목기러기를 전달하는 의식이다. 목기러기는 신랑의 손윗사람인 ‘기럭아범’이 신부의 어머니에게 전달한다. 이때 신부 어머니는 목기러기를 자신이 입고 있는 치마로 받아서 초례상 신랑 자리 옆에 조그맣게 차려진 소반상 위에 놓는다. 신랑은 홀기의 절차에 따라 신부의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초례청에 기러기가 놓인 소반상을 바라보고 서서 북향 재배를 올린다. 이렇게 북향 재배를 올리는 이유는 임금에게 혼인을 고한다는 의미이다.

대례는 신붓집 안마당에서 이루어진다. 안채가 있는 곳에 병풍을 치고 마당에는 멍석을 깐 뒤 초례상을 놓는다. 초례상에는 목기러기, 암탉, 수탉, 병에 꽂은 대나무와 소나무, 삼실과 등과 술잔, 안주가 올라간다. 닭은 보자기에 싸여서 신랑 쪽엔 장닭, 신부 쪽엔 암탉이 놓인다. 행례상에 놓인 닭이 상 위의 쌀을 쪼아 먹으면 신랑 신부가 잘 산다는 속신이 있다.

전안례가 끝나면 홀기에 따라 신랑과 신부가 초례상 앞에 마주 서고 교배례를 행한다. 교배례는 신랑과 신부가 절을 주고받는 절차이다. 교배례를 마치면 신랑과 신부가 술을 나눠 마시는 합근례를 행한다. 신랑은 교배상 위로 술을 건네고, 신부의 시녀를 맡는 사람이 신부의 손을 거쳐 상 아래로 술을 건넨다. 식이 끝나면 신랑과 신부는 안채에 마련된 신방에서 첫날밤을 보낸다. 혼례에 참석한 손님과 친척들은 신방의 문을 뚫어 엿보기도 한다.

[재행, 신행, 현고구례, 근친]

재행(再行)은 신랑이 혼례를 마치고 본가에 갔다가 다시 신붓집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상주 지역에서는 ‘인재행(引再行)’이라 하여 신랑이 신부와 첫날밤을 보내고 3일째 되는 날에 바깥에서 3일을 머무르고 돌아간다. 신랑이 인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신부의 친척들이 신랑을 괴롭히는 동상례(東床禮)를 한다. 인재행을 마친 신랑은 혼자 본가로 돌아갔다가 예물과 폐백을 지참하여 삼행(三行)을 간다.

신행(新行)은 신부가 시댁으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상주 지역에서는 신부가 친가에 1년을 머무른 뒤에 시댁으로 가는 ‘묵신행’ 혹은 ‘신부묵히기’ 관습이 일반적으로 행하여졌다. 신부가 묵신행을 하는 동안 시부모에게 옷감, 옷, 이불 등을 보냈다. 신부가 신행을 갈 때에는 시집에서 쓸 가재도구와 이불, 폐백 음식 등을 지참한다. 신부가 신행을 온 첫날은 시어머니가 안방에서 신부와 신랑을 데리고 셋이 함께 자기도 한다. 시부모가 신부도 자식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라고 한다.

신부가 신행을 오고 이튿날이 되면 시부모에게 인사를 드리는 현고구례(見舅姑禮)를 한다. 신부는 신행 때 가져온 폐백 음식으로 상을 차려 신랑의 조부모나 부모에게 절을 올린다. 신부가 시집온 지 사흘째 되는 날이면 시집 부엌에 들어가 신행 올 때 가지고 왔던 찹쌀로 밥을 지어 시부모의 아침상을 차린다.

신부가 시집에서 머무르다 다시 친가로 가는 것을 근친(覲親)이라고 한다. 근친을 갈 때에는 떡과 짐을 드는 일꾼이 신부의 시아버지와 함께 동행한다. 신부는 친정에서 한 달에서 1년을 지내고 시집으로 돌아간다.

[오늘날의 혼례]

한국 사회가 급격하게 산업화·도시화되고 세계화되는 흐름 속에서 혼례의 의미와 방식, 형태 역시 빠르게 변화하였다. 생업 방식의 다변화와 같은 사회적·경제적 변화와 자유연애의 보편화 등 가치관의 변화로 말미암아 혼례는 가문 간의 결합보다는 개인 간의 결합이라는 의미가 강하여졌다. 그리고 과거에는 혼례가 한 사회의 성인으로서 자격을 인정받는 통과의례로서의 의미도 지녔으나, 이러한 의미는 결혼하는 연령이 높아지면서 약화되고 있다. 또한 예식 업체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현대식 혼례가 보편화되어 1970년대 이후에는 농촌 지역에서도 전통 방식의 혼례를 치르는 경우는 드물게 되었다.

한편, 도농 복합 지역인 상주의 경우 농촌 인구의 감소, 지역 내 성비 불균형에 따라 외국인 여성과 국제결혼을 하는 남성이 증가하는 등 혼인의 형태도 변화하였다. 최근에는 지방 정부 차원에서 혼인율을 끌어올려 지역 내 인구 감소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자 신혼부부에 대한 장려금 지원 등의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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