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4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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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尙州 上板里 胎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상판리 산5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창국 |
조성 시기/일시 | 1484년 - 상주 상판리 태실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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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480년 - 안양군 출생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480년 - 완원군 출생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505년 - 안양군 사망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509년 - 완원군 사망 |
이장 시기/일시 | 1928년 5월 - 상주 상판리 태실 이전 |
현 소재지 | 상주 상판리 태실 -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상판리 산51 |
성격 | 태실 |
관련 인물 | 안양군|완원군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상판리에 있는 안양군과 완원군의 태실.
[개설]
상주 상판리 태실(尙州 上板里 胎室)은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상판리에 있는 안양군(安陽君) 이항(李㤚)[1480~1505]과 완원군(完原君) 이수(李𢢝)[1480~1509]의 태실이다. 이항은 성종의 3남으로 친어머니는 귀인(貴人) 정씨(鄭氏)이고, 이수는 성종의 4남으로 친어머니는 숙의(淑儀) 홍씨(洪氏)이다.
[위치]
상주 상판리 태실은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상판리 산51번지에 있다. 상판리에 있는 상판저수지의 서쪽으로 1.7k㎞ 정도 가다가 우회전하면 반계천이 나타나는데, 반계천 건너기 전 왼쪽에 보이는 산 정상부에 태실이 있다.
[변천]
안양군과 완원군은 둘 다 1480년에 태어났으며, 장태(藏胎) 또한 둘 다 1484년(성종 15) 10월 10일 이루어졌다. 태실은 일제 강점기인 1928년 5월 서삼릉으로 이전되었다. 석함을 제외한 유물[태지석(胎誌石), 내외 태항아리, 동전편]은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금석문]
안양군 태지석에는 ‘황명 성화십육년 정월 초오일 생 왕자 수담아기씨 태 성화이십년 시월 초십일 자시 장(皇明 成化十六年 正月 初五日 生 王子 壽聃阿只氏 胎 成化二十年 十月 初十日 子時 藏)’, 완원군 태지석에는 ‘황명 성화십육년 십이월 이십구일 생 왕자 수석아기씨 태 성화이십년 시월 초십일 자시 장(皇明 成化十六年 十二月 二十九日 生 王子 壽石阿只氏 胎 成化二十年 十月 初十日 子時 藏)’이 새겨져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상주 상판리 태실에 대한 정밀 발굴 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다만 일제 강점기에 이루어진 태실의 서삼릉 이전으로 인하여 파헤쳐진 뒤 복원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현황]
현재 산 정상부 중앙에는 민묘 1기가 있는데, 민묘 서쪽 가장자리에 태함 상부 뚜껑 2개와 뒤집혀 작은 구멍이 보이는 태함 하부 1개가 일렬로 일부 노출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서삼릉으로 태실이 이전된 뒤 민묘가 조성될 때 태함을 한쪽으로 밀어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태함의 지름은 좌로부터 68㎝, 72㎝, 68㎝이며, 가장 오른쪽 태함의 구멍 지름은 15㎝이다.
[의의와 평가]
상주 상판리 태실은 화서면 상현리 태실, 함창읍 태봉리 태실과 함께 경상북도 상주 지역의 태실 문화를 알 수 있는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되며, 향후 태함의 원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 및 복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