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4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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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千之 |
영어공식명칭 | Ryu Cheonji |
이칭/별칭 | 자강(子强),어은(漁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순한 |
출생 시기/일시 | 1616년 - 류천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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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52년 - 류천지 선릉참봉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66년 - 류천지 의금부도사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68년 - 류천지 사섬시주부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69년 - 류천지 용강현령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70년 - 류천지 현풍현감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75년 - 류천지 사헌부지평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77년 - 류천지 단양군수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89년 - 류천지 사헌부장령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689년 - 류천지 사망 |
출생지 | 유곡 -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
거주|이주지 | 상주 수암종택 - 경상북도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 |
외가|처가 | 유곡 -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
부임|활동지 | 용담현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
부임|활동지 | 현풍현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
부임|활동지 | 단양군 - 충청북도 단양군 |
묘소|단소 | 류천지 묘소 - 경상북도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풍산(豊山) |
대표 관직 | 사헌부장령 |
[정의]
조선 후기 상주 출신의 문신.
[가계]
류천지(柳千之)[1616~1689]의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자강(子强), 호는 어은(漁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 류중영(柳仲郢)이고, 할아버지는 영의정 류성룡(柳成龍)이다. 아버지는 사헌부지평 류진(柳𥘼)이고, 어머니는 권채(權采)의 딸 안동 권씨(安東 權氏)이다. 부인은 이준(李埈)의 딸 흥양 이씨(興陽 李氏)이고, 아들은 류명하(柳命河)이다.
[활동 사항]
류천지는 1616년(광해군 8) 안동부 내성현[현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 있는 외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류진으로부터 서애 학풍을 계승하였으며, 1652년(효종 9) 유일(遺逸)[초야에 은거하는 선비를 찾아 천거하는 인재 등용책]로 선릉참봉에 제수되었다. 1666년(현종 7) 의금부도사를 거쳐 1668년 사섬시주부를 역임하였다. 1669년(현종 10)에는 전라도 용담현령으로 부임하였고, 1670년 경상도 현풍현감으로 전임되었다.
류천지는 현풍현감 재임 시 관아의 창고를 열어 역병과 가뭄으로 굶주리는 백성을 구하고 부역과 조세를 감면하는 등 구휼에 앞장섰다. 또한 곽재우(郭再祐)의 사당을 수축할 때도 자신의 녹봉을 내놓아 건립을 도왔다. 이에 백성들이 류천지의 공덕을 기려 거사비(去思碑)를 세웠다고 한다.
류천지는 현풍현감 퇴임 후 사헌부지평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1677년(숙종 3)에는 충청도 단양군수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이후 관직 생활에서 물러난 뒤에는 지금의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 있는 수암종택에 머물면서 향촌 활동과 학문에 매진하였다. 류천지는 1689년 다시 사헌부장령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사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류천지의 저술로는 후손 류심춘(柳尋春)이 유고를 모아 간행한 『어은일고(漁隱逸稿)』가 전한다.
[묘소]
류천지의 묘소는 경상북도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