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1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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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巨倉里 |
영어공식명칭 | Geocha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거창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삼조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거창리(巨倉里)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거야리(巨夜里)의 ‘거(巨)’ 자와 창리(倉里)의 ‘창(倉)’ 자를 따서 ‘거창리’라고 하였다.
[형성 및 변천]
거창리는 본래 상주군 공동면(功東面)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방교리(芳橋里), 창리, 화현리(花峴里), 거야리를 병합하여 경상북도 상주군 공성면 거창리로 개설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 복합 형태의 시 설치로 상주시와 상주군이 통합되면서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거창리로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거창리는 웅이산의 동쪽 줄기와 동지골산의 북쪽 줄기가 만나는 곳에 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마을에는 뒷까끔, 안산, 앞까끔, 장수만데이 등의 산이 있다. 개십골, 배내미, 장처내미골, 청자골, 황살골 등 크고 작은 골짜기 주변에 거배미들, 남원들(南院들), 짓채이들, 창말앞들, 황살들 등의 경작지[논]가 조성되어 있다.
[현황]
2020년 12월 말 현재 거창리의 면적은 약 4㎢이며, 인구는 총 98가구, 159명[남자 75명, 여자 84명, 외국인 제외]이다. 거창리는 공성면의 남서쪽에 있으며, 동쪽으로 이화리, 옥산리, 남서쪽으로 장동리, 남쪽으로 영오리, 북쪽으로 금계리와 접하고 있다. 행정리로는 거창리, 창리가 있다.
거창리의 자연 마을로는 거배미[거야(巨夜)], 끼뿌리[수근(樹根)], 아래뜸, 안마, 옥계, 우뜸, 원마, 제비골, 주막뜸, 창말[창리(倉里)], 청림이, 화봉 등이 있다. 거야는 창말 서쪽 산 너머, 원마의 남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웅산(熊山) 아래 깊은 골 안에 있어서 일조 시간이 짧고 밤이 길어 거야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또 먼 옛날 대홍수 때 온 천지가 물에 잠겼으나 마을의 뒷산은 큰 배가 떠다니는 형상만큼 남아 있어, 멀리서 보면 커다란 배가 둥둥 떠다니는 것과 같다 하여 거배미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창리는 병성천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병성천 동쪽 국도 제3호 옆에 기념비 2기가 서 있다. 임진왜란 때 군량미를 보관하는 큰 창고가 있었고, 군사 훈련도 하였으며 무기도 만들었다고 하여 거창이라 불렸다고 한다. 조선 말 공동면, 공서면, 청남면의 곡식을 수납하는 북변창(北邊倉)이 있었다고 한다.
끼뿌리[수근]는 거배미 동쪽, 원마의 서쪽인 병성천 가에 있는 마을이다. 꽃 뿌리가 변하여 끼뿌리가 되었다고 한다. 또 마을 뒷산의 형상이 나무 뿌리가 뻗쳐 있는 듯한 형상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삼국 시대 백제의 영향을 많이 받은 지역으로, 군사적 요충지였다고 한다.
이 외에 옥계는 옥산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맑은 물이 흐르는 내라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제비골은 창리 남쪽에 있는 마을이며, 뒷산의 산세가 물찬 제비와 같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여남고개[왜유령(倭踰嶺)]를 넘나 드는 길손이 쉬어 가던 마을이라 한다. 주막뜸은 창리 동쪽에 있는 마을로, 주막이 있어 이름이 붙여졌다.
문화유산으로는 거창리 고분군, 거창리 비석군, 공성창 터, 소리정(素履亭) 터 등이 있고, 보호수로는 거창리 보호수[지정 번호 11-24-5]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