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3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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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仙橋里 |
영어공식명칭 | Seongyo-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선교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현미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선교리(仙橋里)는 하천이 양쪽으로 갈라진 머리쪽이 되므로 ‘갯머리’ 또는 ‘포두’, ‘선교’라 한 데서 ‘선교리’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선교리는 본래 상주군 화동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봉암리, 신기리, 갈평리, 신포리, 백자리를 병합하여 경상북도 상주군 화동면 선교리로 개설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 복합 형태의 시 설치에 따라 상주시와 상주군이 통합되면서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선교리로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선교리는 명칭의 유래처럼 삼포리천(三浦里川)의 머리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하천 주위로는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다. 곳곳에 산지가 많은 지형이나 개간이 많이 되었다. 선교리 양쪽으로는 북서쪽의 원통산, 동쪽의 무지개산이 있으며 골짜기마다 구릉성 평지가 넓게 분포되어 있다. 남쪽의 신의터재는 화동면에서 상주시 내서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며, 금강과 낙동강이 갈라지는 분수령이 된다.
[현황]
2022년 12월 말 현재 선교리의 면적은 7.2㎢이며, 인구는 135가구, 257명[남자 131명, 여자 126명, 외국인 제외]이다. 선교리는 화동면의 중앙부에 있으며, 동쪽으로 어산리, 서쪽으로 화서면 봉촌리, 남쪽으로 이소리, 북쪽으로 판곡리와 접하고 있다. 행정리는 선교1리, 선교2리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자연 마을로는 갈평(葛坪)·골마·큰마·대하(臺下)·새터·서당마 등이 있다.
갈평은 수원이 좋지 않고 칡이 많아 농경 생활이 어려워 갈평이라 하였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큰마의 한산 이씨와 골마의 풍양 조씨 사이에 갈등이 있었는데 두 마을의 경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갈평이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골마는 고려 중기 풍양 조씨(豊壤 趙氏)가 들어와서 살게 된 것이 마을의 시작이며 골짜기 양편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하여 골마라 한다. 큰마 혹은 대상(臺上)은 인근 자연 부락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있으며, 원래는 가장 큰 마을이라 하여 큰마라 하였다. 고려 중기 한산 이씨(韓山 李氏)가 처음 개척하였던 것이 마을의 시작이다.
대하는 대상의 아래에 있다 하여 대하라 하였다고 한다. 지대가 평평하고 드나들기 편하여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다. 새터 혹은 신기(新基)는 조선 초에 만들어진 마을인데, 골마와 큰마 인근에 사람들이 새로 들어와 살았다 하여 새터라 하였다고 전한다. 서당마 혹은 서당(書堂)은 원통산 중턱에 세워졌다. 서당마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마을에 봉암서당(鳳岩書堂)이라고 하는 서당이 있다.
선교리는 양쪽으로 높은 산을 끼고 있는 지형이지만 경사가 완만하여 영농과 거주에 용이하며, 평야 지대와 산 중턱에 마을들이 있다. 선교리는 농업이 주된 산업으로, 특히 캠벨이나 샤인머스캣 등의 포도가 유명한데, 화동면을 중심으로 여러 포도 생산 조합이 있다. 선교리 또한 삼포리천 근방이 거의 포도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에 산 중턱에는 축사가 자리 잡고 있으며 경사지를 이용한 계단식 논도 찾을 수 있다. 기타 작물로는 인삼 등을 재배하며 산지가 많은 특성을 살려 버섯을 재배하기도 한다.
주요 문화유산으로는 봉암서당이 있다. 봉암서당은 1955년(명종 8) 상주목사 신잠(申潛)이 세운 서당인데, 후대에 건립된 응암서당(應岩書堂)과 함께 인근 지역의 후학을 양성하는 학문 연구의 장으로 기능하였다. 주요 도로로는 화동면과 상주시 내서면을 잇는 군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