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0358
한자 於山里
영어공식명칭 Eosa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어산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현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경상북도 상주군 화동면 어산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연표보기 - 경상북도 상주군 화동면 어산리에서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판곡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12.3㎢
가구수 60가구
인구[남/여] 108명[남 51명|여 57명]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어산리(於山里)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어산리’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어산리는 본래 상주군 화동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호계리, 상기리, 어산리, 심방리를 병합하여 경상북도 상주군 화동면 어산리로 개설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 복합 형태의 시 설치에 따라 상주시와 상주군이 통합되면서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어산리로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어산리의 대부분은 높고 거친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쪽 일부 산 사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면적이 무지개산의 권역이다. 구릉성 평지 등 사람이 거주하고 농경을 할 수 있는 구역은 무지개산 아래 좁은 골짜기나 하천 변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산리의 서쪽 끝은 신의터재, 혹은 신의티라 불리는 고개로 금강(錦江)과 낙동강(洛東江)의 분수령이다. 어산리화동면에서 유일하게 낙동강 권역에 해당한다.

[현황]

2022년 12월 말 현재 어산리의 면적은 12.3㎢이며, 인구는 60가구, 108명[남자 51명, 여자 57명, 외국인 제외]이다. 어산리화동면의 동부에 있으며, 동쪽으로 내서면 낙서리, 평지리, 서쪽으로 이소리, 선교리, 판곡리, 남쪽으로 모서면 대포리, 석산리, 내서면 평지리, 북쪽으로 내서면 서원리와 접하고 있다. 행정리는 어산리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자연 마을로는 터골, 돌적골, 장자골 등이 있다.

터골은 어산리 동편 무지개산의 작은 골짜기에 있다. 고려 말 경주 김씨(慶州 金氏)가 마적들을 피하여 정착하였다고 전하며 어산리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절터가 있다 하여 터골이라 부른다고도 한다. 마을 입구에서 진입하는 방향으로 계단식 논이 있고 마을 안쪽에는 포도밭이 있다. 마을 안에 돌을 많이 쌓아 두었다 하여 돌적골 또는 석적(石積)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 초에 진주 하씨(晉州 河氏)가 처음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장자골은 신의터재에서 내서면으로 넘어가는 초입에 있는 마을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북진을 알리기 위한 봉화대에 쓰일 장작을 쌓아 두었다고 하여 ‘장자’라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밀양 손씨(密陽 孫氏)가 처음 개척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어산리 마을들은 산 사이 구릉성 평지를 기반으로 형성되어 있다. 어산리는 농촌 지역으로 농업이 주된 산업이다. 특히 캠벨이나 샤인머스캣 등의 포도가 유명하다. 화동면을 중심으로 여러 포도 생산 조합이 있으며 어산리 또한 하천 근방으로 포도 재배가 많이 이루어진다. 포도 이외의 과실수로는 복숭아 등이 있으며 산 아래 음지에서는 인삼도 재배하고 있다.

주요 대중교통 서비스로는 시내버스가 있으며, 일반 버스로 700번, 710번, 730번 등의 버스 노선이 운영된다. 주요 도로로는 상주시 화동면상주시 내서면을 잇는 군도 제20호가 있다. 상주의 군도 제20호의 길을 정비하는 선형 개량 공사 과정에서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상주 어산리 구석기 유물은 성림문화재연구원이 2018년 상주 화동면 어산리 일원에서 발굴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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