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3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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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靈梧里 |
영어공식명칭 | Yeongo-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영오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삼조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영오리(靈梧里)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영수리(靈水里) ‘영(靈)’ 자와 오동리(梧桐里)의 ‘오(梧)’ 자를 따서 ‘영오리’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영오리는 본래 상주군 공동면(功東面)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영수리, 오동리, 웅곡리(熊谷里)를 합하여 경상북도 상주군 공성면 영오리로 개설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 복합 형태의 시 설치에 따라 상주시와 상주군이 통합됨으로써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영오리로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영오리는 서쪽 끝의 웅이산과 동쪽의 둥지골산 아래 조성된 마을이다. 영오리 남서쪽에는 은혜봉이 있고, 북동쪽에서 남쪽으로 형성된 낮은 지대에 마을과 경작지[들]가 조성되어 있다. 서쪽에는 웅이산, 동쪽에는 둥지골산이 있기 때문에 약목골, 물방아골, 큰골 등 크고 작은 골짜기를 따라 다래바오들, 멍들, 황새마들, 방수들 등 소규모 경작지[들]가 조성되어 있다. 남천이 공성면, 청리면, 신흥동, 동문동으로 흘러간다. 대표적 저수지로는 영오지가 있다.
[현황]
2022년 12월 말 현재 영오리의 면적은 약 6㎢이며, 인구는 82가구, 143명[남자 71명, 여자 76명, 외국인 제외]이다. 영오리는 상주시의 남서쪽에 있으며, 동쪽으로 이화리, 서쪽으로 충청북도 영동군 추풍령면 웅북리, 남쪽으로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옥계리, 북쪽으로 장동리, 거창리와 접하여 있다. 행정리는 영오리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 마을에는 말남[말랑], 문이미, 신기(新基)[새터], 영수동(靈水洞)[큰마], 오동(烏洞) 등이 있다.
말남은 영오리 남서쪽 문이미마을 남쪽 능선에 농사짓는 물로 다투는 일이 많이 일어나자, 산 꼭대기에 임시 거처를 세워 마을을 지키고자 하였고, 이에 산 꼭대기에 세워진 마을이라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다. 문이미는 말랑마을의 북쪽, 새터의 서쪽에 있다. 새터가 어모동과 시내를 사이에 두고 양편에 마을이 생기면서 농사철만 되면 물싸움이 잦아 서로 물을 넘긴다 하여 물넘기기, 물넘이, 문이미라 불렀다. 신기는 문이미 동쪽에 있다. 오동마을의 까마귀 모양 바위 틈에서 지네가 많이 나와서 사람들이 생활하기 어려워 옮겨 왔으므로 새터가 되었다고 한다. 오동은 영오리 북쪽에 있다. 마을 앞 들판의 작은 바위들이 마치 까마귀가 앉아 있는 모양인 것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영수동은 신기 서쪽에 있다. 오동마을에서 옮겨 온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산다고 큰마라고 불렀다.
영오리는 밭농사와 과수 농사[특히 밤나무가 많다], 논농사 위주로 농경이 이루어지며, 우사도 많이 볼 수 있다. 마을의 문화유산으로 웅이산 남쪽 기슭에 있는 영수암(靈水庵) 터, 오동마을 입구의 영오리 당산(堂山), 문이미마을 입구의 영오리 보호수[지정 번호 11-24-7-3]가 있다. 또한 용암문선생위선 기념비(龍岩文先生衡善 記念碑)와 전도사 이사룡 기념비(前都事 李士龍 記念碑)가 있다. 이 밖에 플랫폼 무릉 내 청춘미술관, 새터마을 동쪽 약수터인 옻물탕 등이 있다. 주요 도로로 국도 제3호가 영오리 동쪽 경계선으로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