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0379
한자 龍新里
영어공식명칭 Yongsi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용신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경상북도 상주군 공성면 용신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연표보기 - 경상북도 상주군 공성면 용신리에서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용신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5㎢
가구수 64가구
인구[남/여] 119명[남 50명|여 69명]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용신리(龍新里)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용상리(龍上里)의 ‘용(龍)’ 자와 신서리(新書里)의 ‘신(新)’ 자를 따서 ‘용신리’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용신리는 본래 상주군 청남면(靑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사동(寺洞), 신서리, 용상리, 임하리(林下里)를 합하여 경상북도 상주군 공성면 용신리로 개설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 복합 형태의 시 설치에 따라 상주시와 상주군이 통합됨으로써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용신리로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용신리 북쪽에는 국수봉(國首峰), 용신리 동쪽에는 서산(西山)이 있다. 크고 작은 골짜기를 따라 까출미들, 용산앞들, 출미들, 쑤안, 봇걸들 등의 경작지[들]가 있다. 욱골, 옷생골, 작은절골, 토끼골, 황동골 등의 골짜기가 있다. 절골저수지[사동저수지(寺洞貯水池)], 골가실저수지, 까칠미저수지, 용산곡저수지(龍山谷貯水池), 지니저수지 등의 저수지가 있다.

[현황]

2022년 12월 말 현재 용신리의 면적은 약 5㎢이며, 인구는 64가구, 119명[남자 50명, 여자 69명, 외국인 제외]이다. 용신리는 상주시의 남서쪽에 있으며, 동쪽으로 인창리, 남쪽과 서쪽으로 봉산리, 북쪽으로 외남면 구서리와 접하고 있다. 행정리는 용신1리, 용신2리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 마을에는 사동(寺洞)[사곡(寺谷), 절곡, 절골], 삼거리(三巨里), 용산(龍山)[용산골, 용상(龍上), 용상골], 이층[이청] 등이 있다.

사동은 임진왜란 전후 여산 송씨(礪山 宋氏)가 마을에 정착할 때 마을 뒷산에 절이 있었다고 하여 사곡[절곡]이라 불렀다고 한다. 삼거리(三巨里)는 현재 옥산리, 용상골, 탑골로 가는 세 갈래 길목에 있다. 용산은 임진왜란 때 김해 김씨가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 뒷산의 형상이 마치 용이 날아오르는 기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용산골이라 불렀다. 1913년 대홍수로 인하여 용산골이 사라지자 아래로 내려와 마을을 조성하였다. 이층[이청]은 삼거리마을 북쪽에 있다. 1910년경 홍씨가 농사를 지으면서 이층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하여 이층이라 이름 붙여졌다.

용신리의 서쪽과 북쪽에는 산이, 동쪽과 남쪽에는 마을과 평야가 있다. 마을은 주로 용산앞들 뒤쪽 산자락에 있고, 주로 논농사를 한다. 골짜기가 많고 저수지가 많아 농수를 확보하기 쉽고, 넓은 들판은 경지 정리가 이루어져 농사 짓기에 유리하다. 문화유산으로 송량(宋亮), 김광두(金光斗), 김충(金冲), 고인계(高仁繼)를 배향한 효곡서원(孝谷書院), 송이회 일가의 충효열을 기리는 정려, 절골 터 등이 있다. 주요 도로로 지방도 제997호용신리 동쪽 경계선으로 지나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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