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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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銅器 時代 |
영어공식명칭 | Bronze 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방용철 |
[정의]
경상북도 상주 지역에서 청동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철기가 등장하기 이전까지의 역사.
[개설]
청동(靑銅)은 구리와 주석을 혼합한 합금을 말하며, 주석 이외에 아연이나 납을 섞기도 한다. 인류가 도구를 제작하는 데 활용한 최초의 금속으로, 청동기의 등장은 역사 발전 과정에서 청동기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 한국의 청동기는 대체로 무기류(武器類)가 주종을 이루는데, 의기(儀器)·공구(工具)·장신구(裝身具) 등도 많이 제작되었다. 경상북도 상주 지역에서는 한국 전기 청동기 문화의 표지적 유물로 손꼽히는 비파형동검(琵琶形 銅劍)[혹은 요령식동검(遼寧式銅劍)]이 출토되어 대략 기원전 8세기 무렵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상주의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는 고인돌과 선돌, 주거 유적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민무늬토기 산포지와 석기 산포지 또한 다수 확인되고 있다. 특히 상주 복룡동 유적에서 발굴 조사된 집자리의 경우 한국의 청동기 문화상을 대표하는 송국리(松菊里) 형식이 확인되어 충청권과 영남 내륙권을 잇는 전파 경로로 중요시된다.
청동기 시대 유적은 대체로 상주 지역을 관통하는 낙동강에 인접하여 분포하는 양상을 보이며, 선돌 유적은 특히 다수의 고인돌이 밀집한 유적과 동반하는 경향성을 보이는 점이 특징적이다. 여러 청동기 시대 유적들과 출토 유물의 편년을 종합하여 보면 상주 지역의 청동기 시대는 대략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1세기 무렵까지 지속되었다.
[청동기의 수용]
현재까지 상주에서 출토되었다고 알려진 청동기는 출토 유적지 및 확보 경로가 정확하지 않다. 대부분의 청동기는 전(傳) 상주 출토라고 알려져 있거나 낙동면 일대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한다. 대표적인 청동 유물로는 한국의 전기 청동기 문화를 잘 보여 주는 비파형동검 혹은 요령식동검 2점을 들 수 있다. 중국의 동북 지방인 요령성 일대에서 기원전 10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처음 만들어졌으며, 한반도에는 대략 기원전 8세기 무렵에 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주 지역이 한반도의 중북부 지역과 영남 지역을 왕래하는 관문 기능을 하였던 만큼 비교적 일찍부터 청동기 문화가 유입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보다 늦은 시기의 청동기로는 한국식 청동기 문화를 대변하는 세형동검 4점과 청동팔두령구, 청동쌍두령구 등이 전한다. 이들은 청동기 자체의 선진적인 양식은 물론 금강 유역권과 낙동강 유역권의 청동기 문화가 연관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유물로 중요시된다. 쇠뿔형 동기, 유공십자형동기, 망치형동기, 칼자루끝장식, 청동 창끝, 한식(漢式) 청동 거울 또한 상주 지역에서 출토된 청동기들이다. 한식 청동 거울의 양식을 고려하면 전한(前漢) 중·후기에서 기원전 1세기 무렵에 비정할 수 있다. 쇠뿔형 동기와 유공십자형동기 등 일부 이형동기는 낙동강 하류 유역을 비롯하여 일본 쓰시마 지역과도 교류가 있었던 흔적으로 이해된다. 그런 점에서 상주 지역에서 출토된 청동기 유물은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1세기까지 광범위한 시기에 걸쳐 선진적인 정치·문화 체로서 사벌국(沙伐國)이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청동기 시대의 생활과 유적]
청동기 시대는 사람들이 벼농사 등의 농경 생활을 본격화하면서 낮은 구릉 지대나 하천 인근의 평지에 집단을 이루어 살기 시작하였으며, 사회 내부의 지위 혹은 신분에 차이가 생겨난 것으로 이해된다. 기원전 3세기를 전후하여 철기(鐵器) 시대가 시작되기까지 상주 지역에도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청동기 문화가 번성하였다. 청동기 유적은 우선 고인돌과 선돌 유적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청동기 시대의 생활상을 보여 주는 집자리와 구상 유구, 민무늬토기 산포지, 석기 산포지 등이 여러 곳에서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낙동강이나 인근 지류가 내려다보이는 구릉성 지형의 사면에 있는 양상을 보이는데, 군집(群集)을 이룬 유적이 많다. 상주시 헌신동·화개동·부원동·중덕동·초산동, 함창읍 증촌리, 사벌국면 매호리, 중동면 회상리, 낙동면 분황리·신상리·비룡리, 모동면 수봉리, 외서면 봉강리, 외남면 지사리·구서리, 공성면 초오리·용안리·금계리·봉산리·청리면 하초리 등에서 확인되었다. 그중 상주 청리 유적의 16기의 고인돌은 직접적인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으며, 적색마연토기와 간돌칼·간돌화살촉·관옥 등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선돌은 군집을 이룬 고인돌 유적과 유사한 분포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상주시 부원동·중덕동·헌신동·지천동, 함창읍 증촌리, 중동면 회상리, 낙동면 구잠리, 공성면 봉산리, 화북면 입석리, 청리면 마공리·청하리, 은척면 무릉리에서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의 생활상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집자리는 상주 청리 유적과 상주 복룡동 유적에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특히 상주 복룡동 유적에서 조사된 원형의 집자리 2동은 한국의 청동기 문화상을 대표하는 송국리 형식에 속하지만 대구 동천동의 집자리 유적과 닮아 있어 청동기 문화의 전파 경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이외에 은척면 무릉리에서 청동기 시대 수혈 유적, 상주시 남적동·사벌국면 금흔리·낙동면 구잠리 등에서는 민무늬토기 산포지, 공검면 중소리·외서면 관동리 등에서는 석기 산포지가 확인되었다.
상주 지역의 청동기 문화는 지역 내 곳곳에 산재하며 독립적으로 발전하였던 경향이 드러난다. 다만 금강(錦江) 수계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청동기 문화가 유입되었고, 점차 상주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정치체로 사벌국이 등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기 문화를 기반으로 성립하였을 사벌국은 현재의 상주시 사벌국면 일대가 중심지로 추정되는데, 아직 청동기 문화를 방증하는 유적이 확인되지 않은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지역 내 소규모 세력 집단의 경쟁과 통합 과정을 보여 줄 수 있는 청동기 시대의 방어 취락, 환호(環濠) 유적 등이 현재까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점 또한 사벌국의 등장을 이해하기 위하여 보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