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5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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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韓光復會 |
영어공식명칭 | Korea Liberation Society |
이칭/별칭 | 광복회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일제 강점기 상주 출신 채기중이 참여하여 활동하였던 독립운동 단체.
[개설]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는 1913년 1월 경상북도 풍기군[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에서 조직된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대한광복단]과 1915년 1월 대구에서 조직된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의 투쟁적 인사들이 조직한 비밀결사 독립운동 단체이다. 채기중(蔡基中) 등 상주 출신의 인사들이 참여하였다.
[설립 목적]
1910년 국권 상실 이후 국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참여하려는 인사들의 만주 이주는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독립 투사들이 다시 국내로 잠입하여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따른 인적·물적 지원을 목적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광복회는 국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필요한 인적·물적 지원 활동을 전개하였다.
[변천]
1913년 1월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출신의 채기중이 주도하여 대한광복단을 결성하였다. 대한광복단은 의병장 및 용력을 갖춘 인사를 규합하여 무장 투쟁을 통하여 독립을 달성하려는 독립운동단체였다. 채기중은 대한광복단을 조직하여 재만(在滿) 독립군과 연락을 취하였다. 대한광복단은 조선국권회복단의 투쟁적 인사들을 영입하여 1915년 7월 대한광복회를 결성하였다. 대한광복회는 채기중과 박상진(朴尙鎭) 등이 참여한 혁명 단체로 공화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한광복회는 박상진을 총사령으로 경상도·전라도·충청도·경기도·황해도 각지에서 참여한 회원으로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었다. 대한광복회는 국내에서 군자금과 청장년을 모집하여 국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지원하였다.
채기중은 경상도의 책임자로 임명된 뒤, 총사령 박상진과 협의하여 전라도의 이병호(李秉昊), 충청도 예산의 김한종(金漢鍾) 등을 가입시켜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하였고, 나아가 서간도와 북간도에 길림광복회를 결성하여 조직을 해외로까지 확대하였다.
채기중은 1917년 11월 대한광복회의 친일 부호 장승원(張承遠) 처단 공작을 직접 지휘하여 결행하였다. 1918년 1월 대한광복회가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어 대한광복회 회원들이 체포되는 상황에서도 이병호 등과 함께 전라도 지역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1918년 6월 체포되었다. 1921년 8월 12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의의와 평가]
채기중은 대한광복단과 대한광복회의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대한광복회의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채기중은 대한광복회를 주도하면서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을 연결하고, 군자금과 청장년 모집 등을 통하여 국외의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지원함으로써 항일 독립운동의 국민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특히 대한광복회의 친일 부호 장승원 처단을 직접 지휘하여 1910년대 독립운동의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