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계몽운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0559
한자 愛國啓蒙運動
영어공식명칭 The Enlightenment Movement
이칭/별칭 계몽운동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권대웅

[정의]

개항기 경상북도 상주 지역에서 전개된 국권 회복 운동.

[개설]

대한 제국기 국권 회복 운동은 의병 운동애국계몽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애국계몽운동은 갑신정변과 독립협회 운동으로 대표되는 개화 자강 계열의 민족운동을 계승한 것이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을 계기로 개화 자강 계열의 지식인들은 국권 회복을 위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상주 지역의 애국계몽운동은 국권 회복을 위한 신교육구국운동(新敎育救國運動),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이 주류를 이루었다.

[배경]

대한 제국기 애국계몽운동은 “한편으로 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국가의 독립을 보조·유지·회복하고, 다른 한편으로 국내 보수 지배 세력의 횡포로부터 민중의 인권을 보호하고 신장하기 위하여 민중의 의식을 계발한 조직적인 운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애국계몽운동 단체는 1904년 6월 서울에서 설립된 국민교육회(國民敎育會)였다. 국민교육회는 교육 진흥을 표방하였으며, 학교의 설립, 문명적 학문에 응용할 서적의 편찬과 번역 등 교육과 문화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구 지역에서는 1906년 1월 설립된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와 1906년 4월 설립된 대구광학회(大邱廣學會)가 교육 진흥과 식산흥업(殖産興業)을 목표로 한 애국계몽운동을 주도하였다. 이와 같은 애국계몽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 국채보상운동이었다.

경상북도 지역의 애국계몽운동은 1908년 3월 대한협회 대구지회와 서울에서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가 설립되면서 본격화되었다. 경상북도 지역의 대한협회 지회는 1908년 3월 설립된 대구지회를 비롯하여 경북 김천·경주·자인·성주·인동·영천·안동·무릉·선산군 등 10개 군에서 설립되어 교육 진흥과 실업 장려를 목적으로 활동하였다. 한편, 교남교육회는 서울에서 활동하던 영남 출신의 인사들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는 한편, 출신 지역에 계몽사상을 보급하고 흥학운동(興學運動)을 전개하였다.

[전개]

을미의병 이후 상경하였던 보수적인 유생들은 새로운 문물과 사상을 접하고 사상적 변화를 경험하였다. 그중 주목되는 것은 유생들이 조직한 충의사(忠義社)이다. 충의사는 1904년 8월경 조직된 것으로 보이는데, 을미의병에 참여하였던 재야 유생층이 주도하고, 유생층과 연계된 재경 관인들이 참여한 비밀결사였다. 상주 출신 인사로는 유만식(柳萬植)·채규봉(蔡圭鳳)·채명열(蔡鳴悅)·이상덕(李相悳)·유시만(柳時萬) 등, 함창 출신 인사로는 정동일(鄭東一)이 확인된다.

상주 출신으로 1908년 3월 조직된 대한협회 대구지회에 서 활동하였던 유생은 정재덕(鄭在悳)·강신우(姜信友)·권중희(權重熙)·강래희(姜來熙) 등이다. 그중 정재덕은 대한협회 대구지회의 총무를 맡아 활동하였으며, 1907년부터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였던 서상돈의 의연금 전용을 비난하는 통문을 돌려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하였다. 그 뒤 정재덕은 상주로 귀향하여 1908년 사립 광흥학교(廣興學校)를 설립하였다.

1908년 3월 서울에서 활동하던 영남 출신 인사들이 친목과 계몽사상의 보급을 목표로 교남교육회를 조직하였다. 상주 출신으로 유지수(柳芝秀)·권중희(權重熙)·이용우(李龍雨)·정동수(鄭東洙)·정재룡(鄭在龍) 등이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의의와 평가]

대한 제국기 애국계몽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상주 지역에서 조직된 애국계몽운동 단체는 없지만, 상주 지역 출신의 선각적인 유생들이 1904년 서울에서 결성된 충의사, 1908년 대구에서 조직된 대한협회 대구지회, 1908년 서울에서 조직된 교남교육회에 참여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신학문과 신문물을 수용하고 상주 지역에서 신교육구국운동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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