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5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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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國債報償運動 |
영어공식명칭 | National Debt Compensation Campaig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1907년 경상북도 상주 지역에서 전개된 국채보상운동.
[개설]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은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 이후 일제가 차관 1300만 원을 빌미로 대한제국을 경제적으로 예속시키려 하자 국민들이 상환을 주도한 범국민적 운동이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1월 29일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 사장 김광제(金光濟), 부사장 서상돈(徐相燉), 대동광문회(大東廣文會) 회장 박해령(朴海齡) 등 16명이 발기하여 「국채일천삼백만환보상취지서(國債一千三百萬圜報償趣旨書)」라는 격문을 발송하면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국채보상운동 발기인 16명 가운데 상주 출신으로는 정재덕(鄭在悳)과 강신규(姜信圭)가 참여하였고 상주 지역의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2월 외서면 이하리[현 이천리]에서 시작되었다. 1907년 3월 3일에는 이하리 출신 김재익(金在益)과 박정준(朴正準)을 발기인으로 「국채보상상주의무소취지서」를 발표하였다.
[전개]
국채보상운동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던 정재덕과 강신규는 상주 출신의 혁신 유림이다. 1906년 1월 설립된 대구광문사 회원이었던 정재덕은 외서면 우산리 출신이며 1902년 1월 내부주사(內部主事)로 관직에 나아가 1905년 6월 경기전령(慶基殿令)을 사직하고 대구에 정착한 대한제국의 관료였다.
정재덕은 1908년 3월 대구에서 설립되어 활동한 애국계몽운동 단체 대한협회 대구지회 총무로도 활동하였다. 1907년 6월 초 정재덕은 국채 보상 의연금 관리에 대한 경고문 「경고아전국동포(警告我全國同胞)」를 각처의 국채보상운동 단체로 배포하여 대구금연상채회 임원들의 의연금 전용을 비판하는 경고문으로 여론을 환기하기도 하였다.
강신규는 상주 봉대(鳳臺)의 진주 강씨(晉州 姜氏) 가문 출신이며 대동광문회 회원으로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였다. 또한 대한협회 대구지회에도 참여하여 동향의 권중희를 비롯하여 같은 집안의 강신우(姜信友)·강래희(姜來熙) 등과 함께 계몽운동에 참여하였다. 강신규는 순릉참봉(順陵參奉)을 역임한 강석희(姜奭熙)의 아들이며 사립 광흥학교 설립에 참여하였다.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상주 지역의 국채보상운동은 외서면 이하리의 이호서당(伊湖書堂)이 국채보상소 사무를 관장하는 공청(公廳)으로 처음 사용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국채보상상주의무소가 설립되어 국채보상운동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고 1907년 3월 3일 이하리 출신의 김재익과 박정준을 발기인으로 「국채보상상주의무소취지서」를 발표하였다.
김재익은 상주목(尙州牧)의 이방(吏房)을 역임하였으며 본관은 함창 김씨(咸昌 金氏)이거나 상산 김씨(尙山 金氏)로 보인다. 박정준은 충청북도관찰부 주사를 역임한 인물이며 상산 박씨(尙山 朴氏)이다. 박정준은 상주군 참사(參事)를 비롯하여 상주금융조합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양곡상을 경영하여 부를 축적하고 상주 서보(西洑)를 보수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고 한다.
정재덕과 강신규는 국채보상운동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고 김재익과 박정준으로 하여금 상주 국채보상운동을 일으키게 하여 상주 지역에서도 국채보상운동이 적극적으로 전개되었다.『만세보(萬歲報)』와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에는 김재익·정재덕·강신규 등이 각각 20원씩 의연하였다는 기사가 실렸다. 1907년 2월과 3월에 걸쳐 상주 지역에서 모금된 국채 보상 의연금은 총 894원 54전 정도로 추산된다.
[의의]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는 국권을 수호하고 국채 상환을 위하여 나눔과 책임 정신을 아낌없이 발휘한 상주시 국채보상운동을 기리기 위하여 2016년 12월 16일 경상북도와 상주시, 상주문화원 후원으로 상주시민문화공원 안에 ‘상주시 국채보상운동기념비’를 건립하고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상주시 국채보상운동기념비는 너비 1.2m, 높이 2.7m 규모이며 상주 지역 국채보상운동에 관한 내용이 자세히 새겨져 있다.
한편 상주 지역에서 가장 먼저 국채보상운동이 조직적으로 펼쳐진 곳으로 알려진 외서면 이천리에는 상주시와 상주문화원의 후원을 받아 2017년 6월 16일 이천리 마을회관 앞에 ‘상주 국채보상운동 발상 기념비’를 건립하고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상주 국채보상운동 발상 기념비는 높이 50㎝의 받침석 위에 너비 90㎝, 높이 180㎝의 크기로 제작되었으며, 앞면에 ‘상주 국채보상운동 발상 기념비’라는 글귀와 함께 뒷면에 상주 지역의 국채보상운동에 관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