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578 |
---|---|
한자 | 懶齋 蔡壽 神道碑 |
영어공식명칭 | Stele of Chae S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율곡리 산7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창국 |
건립 시기/일시 | 1517년 - 나재 채수 신도비 건립 |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449년 - 채수 출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515년 - 채수 사망 |
문화유산 지정 일시 | 1988년 8월 3일 - 나재 채수 신도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06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나재 채수 신도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나재 채수 신도비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나채 채수 신도비 -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율곡리 산71 |
성격 | 신도비 |
관련 인물 | 채수 |
재질 | 석재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높이 94㎝, 너비 192.5㎝, 두께 106㎝[비석 받침]|높이 208㎝, 너비 상 104.5㎝, 너비 하 106㎝, 두께 상 22.5㎝, 두께 하 21.5㎝[비신]|높이 72㎝, 너비 118㎝, 두께 30.5㎝[이수] |
소유자 | 채홍근 |
관리자 | 채홍근 |
문화유산 지정 번호 |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율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채수의 신도비.
[개설]
나재 채수 신도비(懶齋 蔡壽 神道碑)는 채수(蔡壽)[1449~1515]를 기리기 위하여 1517년(중종 12) 세워졌다. 채수는 본관이 인천, 호는 나재(懶齋)로 충청도관찰사·성균관 대사성·호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세종실록』과 『예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대사헌으로 있을 때에는 폐비 윤씨를 옹호하다가 왕의 노여움으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중종반정 때 4등 공신이 되어 인천군(仁川君)에 봉하여졌다.
채수는 59세 때 벼슬을 버리고 처가인 함창으로 내려와 남은 여생을 보냈다. 1511년(중종 6) 조선 최초의 금서이자 『금오신화』에 이은 두 번째 소설 「설공찬전(薛公瓚傳)」을 저술하였다.
나재 채수 신도비는 1988년 8월 3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0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으며,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이 시행됨에 따라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
[건립 경위]
나재 채수 신도비 비문에 의하면 채수는 1515년 11월 세상을 떠났고, 1516년 3월에 장례가 치러졌다. 1517년 채수의 사위인 이조참의 김안로(金安老)가 채수의 행적을 남곤(南袞)에게 가져가 비명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였다고 한다.
[위치]
나재 채수 신도비는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율곡리 산71번지에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숭덕산길 93-31[율곡리 294]에는 청주 곽씨·안동 권씨·창녕 조씨·인천 채씨 선대를 추모하기 위한 남재사(南齋舍)라는 재실이 있다. 남재사의 남동쪽 앞에 나재 채수 신도비가 있다.
[형태]
나재 채수 신도비는 사자나 해태로 추정되는 비석 받침과 비신, 이수로 구성되어 있다. 비신과 이수는 대리석 한 돌로 제작되었고, 비석 받침은 화강암이다. 이수에는 용, 구름, 파도가 양감이 풍부한 고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장방형의 지대석 위에 있는 비석 받침은 사자 형태로 좌우로 웅크린 모습이며 머리만 비의 앞쪽을 향하고 있다. 비석 받침은 높이 94㎝, 너비 192.5㎝, 두께 106㎝이다. 비신은 높이 208㎝, 너비 상 104.5㎝, 너비 하 106㎝, 두께 상 22.5㎝, 두께 하 21.5㎝이다. 이수는 높이 72㎝, 너비 118㎝, 두께 30.5㎝이다.
[금석문]
나재 채수 신도비의 찬자(撰者)는 남곤, 서자(書者)와 전자(篆者)는 홍언방(洪彦方)이며, 각자(刻者)는 미상이다. 비문은 비신 전면에만 새겨져 있으며, 상부에 가로로 ‘양정채공신도비명(襄靖蔡公神道碑銘)’이라고 새겨져 있고, 전액 아래에는 세로로 비문이 새겨져 있다. 먼저 ‘유명조선국 분의정국공신 증자헌대부 의정부좌참찬 겸지경연 춘추관사 예문관대제학 행가정대부 예조참판 겸홍문관제학 인천군 시양정채공 신도비명 병서(有明朝鮮國 奮義靖國功臣 贈資憲大夫 議政府左參贊 兼知經筵 春秋館事 藝文館大提學 行嘉靖大夫 禮曺參判 兼弘文館提學 仁川君 諡襄靖蔡公 神道碑銘 并序)’, 그다음은 찬자·서자·본문 순으로 되어 있으며, 마지막에 ‘정덕 십이년 정축 십일월 일 입석(正德 十二年 丁丑 十一月 日 立石)’이 새겨져 있다. 비문에는 채수의 생애와 학문적 성향, 성품 및 가족 관계 등에 관한 내용이 있으며, 비문은 『나재집』과 정조 연간에 편찬된 『국조인물고』 권43에도 실려 있다.
[현황]
나재 채수 신도비는 나중에 건립된 보호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비는 이수부터 비신까지 사선으로 절단된 것을 붙였던 흔적이 남아 있다. 비문은 표면의 풍화 작용으로 인하여 많은 글씨가 마모되고 탈락되어 눈으로 관찰이 어려운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나재 채수 신도비는 경상북도 상주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신도비로 남재사 북동쪽에 있는 채수의 묘, 외서면 연봉리의 양정역[폐역], 이안면 이안리의 쾌재정(快哉亭) 등과 함께 채수의 생애를 알려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귀부의 사자상은 매우 특이한 형상으로 신도비 부조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