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925 |
---|---|
한자 | 蔡壽 |
영어공식명칭 | Chae Su |
이칭/별칭 | 기지(耆之),나재(懶齋),양정(襄靖),인천군(仁川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채광수 |
출생 시기/일시 | 1449년 - 채수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468년 - 채수 생원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469년 - 채수 증광시 문과 장원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475년 - 채수 일본 통신사 낙점 |
활동 시기/일시 | 1481년 - 채수 도승지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482년 - 채수 사헌부대사헌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486년 - 채수 충청도관찰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494년 - 채수 호조참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504년 - 채수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단성에 유배 |
활동 시기/일시 | 1506년 - 채수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정국공신 녹훈 |
몰년 시기/일시 | 1515년 - 채수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515년 - 채수 좌찬성에 추증되고 양정(襄靖) 시호를 하사받음 |
추모 시기/일시 | 1703년 - 채수 임호서원 제향 |
추모 시기/일시 | 1768년 - 채수 웅연서원 제향 |
거주|이주지 | 함창현 이안 -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
유배|이배지 | 단성현 -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
묘소|단소 | 채수 묘소 -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율곡리 |
사당|배향지 | 임호서원 -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신흥2길 19-8[신흥리 377] |
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인천(仁川) |
대표 관직 | 호조참판 |
[정의]
조선 전기 상주 출신의 문신.
[가계]
채수(蔡壽)[1449~1515]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기지(耆之), 호는 나재(懶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채영(蔡泳)이고, 할아버지는 세자시강원필선 채윤(蔡倫)이다. 아버지는 남양도호부사 채신보(蔡申保)이고, 어머니는 류승순(柳承順)의 딸 문화 류씨(文化 柳氏)이다. 부인은 권이순(權以順)의 딸 안동 권씨(安東 權氏)이고, 아들은 채윤권(蔡胤權)·채소권(蔡紹權)·채승권(蔡承權)이다.
[활동 사항]
채수는 1449년(세종 31)에 태어나 1468년(세조 14)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469년(예종 1) 증광시 문과에 장원급제한 뒤 예문관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부수찬·부교리·지평·이조정랑 등을 역임하며 세조와 예종의 실록 편찬에 참여하였고, 1475년에는 일본 통신사로 낙점되기도 하였다. 1477년(성종 8)에는 임사홍(任士洪)의 비행을 탄핵하였고, 이후 동부승지·우부승지·좌승지를 거쳐 1481년 도승지에 제수되었다.
채수는 1482년 장례원판결사를 거쳐 사헌부대사헌에 제수되었고, 사헌부대사헌으로 있으면서 폐비 윤씨를 돌보아 줄 것을 청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파직되었다. 1485년 충청도관찰사로 다시 등용되었고, 1488년 명나라 사행을 다녀온 뒤 성균관대사성 등을 거쳐 1494년 호조참판에 제수되었다.
채수는 연산군 재위 후 외직에 나가 있어서 무오사화 때 화를 피하였고, 1499년(연산군 5) 이후 예조참판·형조참판·평안도관찰사 등에 제수되었지만 병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다.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단성으로 유배되었다가 풀려났으며, 1506년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정국공신 4등에 녹훈되고 인천군(仁川君)에 책봉되었다.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함창현 이안[현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에 쾌재정(快哉亭)을 지어 독서와 풍류로 여생을 보내다가 1515년(중종 10)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채수의 저술로는 문집인 『나재집(懶齋集)』 2권이 있다. 1511년에 지은 패관소설 「설공찬전」이 전하는데, 「설공찬전」은 당시 사림의 비난을 받아 금서로 규정되고 모조리 불태워졌다.
[묘소]
채수의 묘소는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율곡리에 있으며, 남곤(南袞)이 지은 나재 채수 신도비(懶齋 蔡壽 神道碑)가 묘소 앞에 세워져 있다.
[상훈과 추모]
채수는 사망한 뒤 좌찬성에 추증되고 양정(襄靖)이라는 시호를 하사받았다. 1768년(영조 44) 상주 웅연서원(熊淵書院), 1703년(숙종 29) 함창 임호서원(臨湖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