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0585
한자 李三億 四世 忠孝閣
이칭/별칭 무양동 충효각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동수4길 119-11[무양동 194-1]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백지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이전 시기/일시 2016년 - 이삼억 삼세 충효각 이전
현 소재지 이삼억 사세 충효각 - 경상북도 상주시 동수4길 119-11[무양동 194-1]지도보기
원소재지 무양동 충효각 - 경상북도 상주시 무양동 197-3
성격 충효각
양식 맞배지붕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무양동에 있는 개항기 충효각.

[개설]

이삼억 사세 충효각(李三億 四世 忠孝閣)이삼억(李三億)과 아들 이경번(李慶蕃), 증손 이정하(李挺夏), 현손 이복운(李復運), 상주 아전 이경대(李慶大)의 충효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이삼억의 본관은 경주로, 임진왜란 때 활약한 이경남(李景南)의 후손이다.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키고 장기(將旗)에 피로 ‘단단고충(斷斷孤忠) 섬적급기(殲賊及己)’라 쓰고 싸웠다고 전한다. 관직은 첨중추(僉中樞)에 이르렀고,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 정부에서 정려를 내렸으며, 상충사(尙忠祠)에 제향되었다.

이경번은 아버지 이삼억이 사망하자 너무 슬퍼하여 기절하였다가 다시 깨어났고, 허리띠를 풀지 않고 쌀밥으로 해상(解喪)하였다고 한다. 계절에 상관없이 음력 초하룻날과 보름날에 성묘를 하였는데, 어느 날 밤 비가 쏟아져서 길을 분간할 수 없자 도깨비가 나타나 길을 밝혀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러한 일이 알려져 병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이정하는 이삼억의 증손이다. 이정하가 12세 때 아버지가 병이 나자 산신에게 기도를 올렸는데, 큰 범이 와서 지켜 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듣고 목사 이민보(李敏輔)가 호랑이도 인성이 있다며 바위에 ‘인(仁)’ 자를 새겼다. 이복운은 이정하의 아들로 효행이 남달라서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었다. 이경대는 상주 아전으로 7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상례를 치렀다. 『순조실록(純祖實錄)』과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에 따르면 ‘1816년(순조 16) 상주 아전 이경대에게 정문(旌門)을 세워 주었다’고 한다.

[위치]

이삼억 사세 충효각경상북도 상주시 무양동 194-1번지[동수4길 119-11]에 있다. 상주시청에서 북쪽으로 약 1.5㎞에 있다.

[변천]

이삼억 사세 충효각의 건립 시기는 알 수 없다. 원래 건물은 상주시 무양동 197-3번지 일대에 있었는데, 2016년 상주 냉림동 382-11번지 유적 국비지원 문화재 지표 조사 때 현재 자리로 이전하였다. 이삼억 사세 충효각무양동 충효각이라고도 부른다.

[형태]

이삼억 사세 충효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전면에만 살대를 세우고 나머지 삼면에는 하부벽을 치고 상부에 살대를 세웠다. 가구는 3량가이다. 이삼억 사세 충효각 내에는 1816년 내려진 ‘효자가선대부요양위호군이경대지려(孝子嘉善大夫行龍驤衛護軍李慶大之閭)’ 현판 등이 걸려 있다.

[현황]

이삼억 사세 충효각은 일반 가옥 사이에 있어 관리 상태가 양호하지 않아 정비가 필요하다.

[의의와 평가]

이삼억 사세 충효각은 경상북도 상주 지역의 충효 정신을 보여 주는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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