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5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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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尙州 恭儉池 |
영어공식명칭 | Gonggeomji Irrigation Reservoir in Sangju |
이칭/별칭 | 공갈못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비재로 1333외 68필지[양정리 199]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이창국 |
조성|건립 시기/일시 | 7세기 후반 - 상주 공검지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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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5년 6월 10일~2011년 12월 27일 - 상주 공검지 발굴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6년 8월 29일~2017년 1월 26일 - 상주 공검지 시굴 조사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195년 - 상주 공검지 개축 |
문화유산 지정 일시 | 1997년 9월 29일 - 상주 공검지 경상북도 기념물 제121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상주 공검지 경상북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상주 공검지 -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비재로 1333외 68필지[양정리 199] |
성격 | 저수지 |
크기(높이,길이,둘레) | 430m[길이]|8.56㎞[못 둘레]|5.14m[수심] |
면적 | 2.6㎢ |
소유자 | 상주시 |
관리자 | 상주시 |
문화유산 지정 번호 | 경상북도 기념물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양정리에 있는 삼국 시대 저수지.
[개설]
상주 공검지(尙州 恭儉池)는 제천 의림지, 김제 벽골제와 더불어 조선 시대 3대 저수지로 알려져 있으며 공갈못이라고도 한다. 못둑을 쌓을 때 ‘공갈’이라는 아이를 묻었다는 매아 설화가 있지만, 조선 전기의 학자 홍귀달(洪貴達)은 「명삼정기(名三亭記)」에서 신뢰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저수지 축조 방식으로 ‘공글리다[땅 바닥을 단단하게 다지다]’, ‘곤구다[곧우다]’라는 우리말과 관련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여름철이면 연꽃이 만발하여, 한때 중국의 전당호(錢塘湖)에 비길 정도의 절경이라고 하였다. 상주 공검지는 1997년 9월 29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2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경상북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건립 경위]
상주 공검지는 발굴 조사 결과로 미루어 7세기 후반에 초축된 뒤 고려 명종 때인 1195년 개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방은 양정리 남쪽의 곡간 능선 사이 협착부를 막아 만든 것이 일부 확인되었고, 축조는 ‘기초층 조성-기초 보강공법 적용-성토공정-성토층 외단 보강층’ 순으로 이루어졌다. 출토 목재의 연대 측정 결과 기초 보강 공법층은 7세기 후반에 축조되었고, 성토층은 다소 축소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1129년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상주 공검지는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비재로 1333외 68필지[양정리 199]에 있다. 양정리에 있는 상주공검지역사관 북쪽에 있다.
[형태]
상주 공검지는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크며, 기록에 나오는 못의 규모를 환산하면 길이 430m, 못 둘레 8.56㎞, 수심 5.14m, 관개 면적 2.6㎢이다.
[변천]
상주 공검지는 제천 의림지,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 등과 함께 삼한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련 기록을 보면 『고려사(高麗史)』 권11, 지리2, 상주목 조에 “큰 제방이 있는데 공검지이다. 1195년(명종 25) 사록 최정빈이 옛터에 쌓았다”라고 하였으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상주목 조에는 “둑 길이가 860보, 너비 800보, 관개 면적은 260결”이라고 하였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8, 상주목 산천조에는 “둘레가 1만 6647척[5.04㎞]”, 1832년의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상주목 편에는 “수심은 10척[3m]이다”, 1899년의 『경상도읍지』 함창현 편에는 “만수일 때 깊이는 4~5장이 된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22, 여지고10, 산천 4, 상주 조에는 “둘레가 22리[8.64㎞]다”라는 기록이 있다.
광무 연간[1897~1907]에 이채연(李采淵)이 제방을 터서 논으로 만들면서 규모가 5만 평[0.16㎢]으로 줄었고, 1924년 경북선 철도 부설로 규모가 축소되었다. 1959년 오태저수지 축조로 상주 공검지의 역할은 축소되었으며, 1964년 2,000평[0.06㎢]만 남기고 매립 후 개인에게 불하하였다. 상주시는 1993년 주변 농지를 매입하고 확장 공사를 벌여 수심 3.4m의 연못으로 복원하였고, 1995~2005년까지 연차적으로 토지를 매입하고 주변을 정비하였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상주 공검지의 복원 정비를 위하여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총 4차에 걸쳐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2005년 1차 시굴 조사를 통하여 제방이 4차에 걸쳐 축조되었음이 확인되었고, 산곡간의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계곡부에 일자형 또는 곡선형의 제방을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2009년 2차 발굴 조사에서는 상주 공검지의 수문과 수통으로 추정되는 가공 목재와 비가공 목재 14점의 연대 측정 결과 7세기와 11~12세기에 각각 축조된 것으로 분석되었다. 11~12세기 대는 고려 명종 때 상주 공검지를 수축하였다는 기록과 관련성이 깊다. 2010년의 3차 시굴 조사를 통하여 현 상주 공검지 남동쪽 제방은 수평과 경사 방향으로 다짐 성토한 성토 공정층과 후대에 조성된 경작지 및 최근의 매립 복토층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2010년 10월부터 2011년까지의 4차 발굴 조사를 통하여 제방의 축조 수법을 가늠하여 볼 기초층, 기초 보강 공법[나뭇가지 부설층, 대규모 목재 시설층의 기초 보강 공법과 내외부에 말뚝을 지그재그로 박은 보강 조치], 성토층[1129년 축조 추정]이 확인되었고, 기초 보강 공법에 사용된 목재를 분석한 결과 7세기 후반에 상주 공검지가 첫 번째로 축조되었음을 확인하였다.
2018년 사적 승격을 위하여 금오문화재연구원에 의하여 2016년과 2017년 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2016년 1지점에서는 조선 시대 부엽층을 확인하였고, 2017년 2지점에서는 일제 강점기의 켜쌓기와 보축 양상이 확인되었다.
[현황]
상주 공검지는 1997년 9월 29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21호로 지정되었다. 2004년부터 유교문화권 사업으로 발굴 조사와 함께 부지의 추가 매입이 이루어졌고, 3만 7000여 평[0.12㎢]에 연꽃이 식재되었으며, 2011~2012년에 상주공검지역사관이 건립되었다. 2011년 6월 29일 환경부에 의하여 상주 공검지 일대가 한국 최초로 습지 보호 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2019년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에 의하여 상주 공검지 일대 2곳에 대한 지질 분석 및 고생물 분석이 실시되었다. 현재 상주 공검지는 수리 시설의 기능은 없는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상주 공검지는 한국 농경 경제의 변천을 가늠할 수 있는 고대 수리 시설인 동시에 영남의 대표적인 민요인 「채련요(採蓮謠)」를 비롯하여 여러 설화 및 다수의 시문이 남아 있어 역사 및 관광 자원으로 가치가 매우 높다. 또한 논습지 지정에 따른 생태 관광 자원화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으며, 축조 공법은 고대 제방 유적 및 고대 토목 기술에 관한 매우 훌륭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