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5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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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尙州 金俊臣義士 祭壇碑 |
영어공식명칭 | Stele of Kim Jun-sin, Sangj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판곡1길 11[판곡리 47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창국 |
건립 시기/일시 | 1850년 - 상주 김준신의사 제단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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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561년 - 김준신 출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592년 - 김준신 사망 |
문화유산 지정 일시 | 1995년 12월 1일 - 상주 김준신의사 제단비 경상북도 기념물 제113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상주 김준신의사 제단비 경상북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상주 김준신의사 제단비 -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판곡1길 11[판곡리 476] |
성격 | 제단비 |
관련 인물 | 김준신 |
재질 | 석재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높이 17㎝, 너비 106.5㎝, 두께 75㎝[비석 받침]|높이 161㎝, 너비 상 59.5㎝, 너비 하 57.5㎝, 두께 18㎝[비신] |
소유자 | 청도 김씨 상주파 종중 |
관리자 | 청도 김씨 상주파 종중 |
문화유산 지정 번호 | 경상북도 기념물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판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제단비.
[개설]
상주 김준신의사 제단비(尙州 金俊臣義士 祭壇碑)는 임진왜란 때 전사한 김준신(金俊臣)[1561~1592]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제단비이다. 김준신은 상주목 화령현(化寧縣) 판곡리(板谷里) 출신으로 본관은 청도이며, 호는 절곡(節谷)이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상주목사 김해(金澥) 예하의 솔령장(率領將)으로 상주의 관군 제1진을 이끌고 대구로 내려갔다. 1592년 4월 20일을 전후하여 대구(大丘) 금호강에서 회군하였다. 4월 25일 상주 북천전투 관군 지휘관으로 참전하였다가, 이일의 종사관인 윤섬, 박지, 사근도찰방 김종무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 김준신의 행적은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정조의 특명으로 ‘의사’ 칭호를 받았고, 충의단에 봉향되었다. 상주 김준신의사 제단비는 1995년 12월 1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1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경상북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건립 경위]
상주 김준신의사 제단비는 임진왜란 당시 상주 관군 지휘관인 솔령장으로 북천전투에서 순절한 김준신을 추모하기 위하여 1850년(철종 1) 건립되었다.
[위치]
상주 김준신의사 제단비는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판곡1길 11[판곡리 476]에 있다. 판곡1리 마을회관 뒤쪽 100m 지점에 첨모재(瞻慕齋)가 있는데, 재실 뒤쪽의 제단비각 안에 있다.
[형태]
상주 김준신의사 제단비는 화문이 양각된 화강암의 비석 받침과 역질사암의 원수형(圓首形) 비신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비문은 우측면을 제외한 3면에 새겨져 있다. 비신 전면에는 글자를 일정한 간격으로 새기기 위하여 표시한 검은색 선의 흔적이 남아 있다. 비석 받침은 높이 17㎝, 너비 106.5㎝, 두께 75㎝이며, 비신은 높이 161㎝, 너비 상 59.5㎝, 너비 하 57.5㎝, 두께 18㎝이다.
[금석문]
상주 김준신의사 제단비 비문은 1849년 완성되었고, 찬자(撰者)는 홍직필(洪直弼), 전자(篆者)는 이경재(李景在), 서자(書者)는 윤정현(尹定鉉), 각자(刻者)는 미상이다. 비신 전면에는 상부에 가로 2열로 ‘유명조선국청도김씨삼세제단비(有明朝鮮國靑道金氏三世祭壇碑)’, 전액 아래에는 세로로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문에는 고려 시대 황간현감(黃澗縣監)을 역임한 입향조 김구정(金九鼎)과 김준신의 아버지 김흡(金洽)에 대하여 간략히 기록한 뒤, 김준신 의사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순절한 경위와 삼세제단비의 건립 과정을 기록하였다. 비문은 『절곡선생유적(節谷先生遺蹟)』 「유허제단비문(遺墟祭壇碑文)」에도 실려 있다.
[현황]
상주 김준신의사 제단비는 1986년 새로 건립된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제단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비신 전면 제액 윗부분 일부가 파손되어 있고 후면 오른쪽 하단에 균열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상태가 양호하다. 비문은 눈으로 관찰이 가능한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상주 김준신의사 제단비는 임진왜란 당시 경상북도 상주 지역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역사 자료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