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0615
한자 枕泉亭
영어공식명칭 Chimcheonjeong Pavilion
이칭/별칭 연당(蓮堂),천향정(天香亭),이향정(二香亭)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경상대로 3123[만산동 699]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577년연표보기 - 침천정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14년 - 침천정 이전
개축|증축 시기/일시 1612년 - 침천정 중건
현 소재지 침천정 - 경상북도 상주시 경상대로 3123[만산동 699]지도보기
성격 누정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상주시
관리자 상주시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만산동에 있는 조선 전기 누정.

[개설]

침천정(枕泉亭)은 1577년 설립한 관 누정으로, 상주목사를 비롯하여 공무에 시달리는 관리들의 휴식처였다. 침천정는 1577년 읍성 남문 밖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이후 수차례 중건되고 중수되었다.

[위치]

침천정은 경상북도 상주시 경상대로 3123[만산동 699] 상주 임란북천전적지에 있다.

[변천]

침천정은 1577년(선조 10) 상주목사 정곤수(鄭崑壽)[1538~1602]가 상주읍성 남문 밖에 건립하여 ‘연당(蓮堂)’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2년(광해군 4) 목수 한술이 중건하였고, 1614년(광해군 6) 목사 강복성이 ‘천향정(天香亭)’으로 개칭하였다. 1693년(숙종 19) 목사 이항이 연못의 구조를 홍백연당으로 고치고 정자 이름을 다시 ‘이향정(二香亭)’으로 고쳤다. 1914년 상주읍성이 헐릴 때 지역민 10여 명이 매입하여 현재의 자리로 옮기고 군수 심환진이 ‘침천정’이라 고쳤다. 내부에는 많은 기문 및 원운 현판이 남아 있다.

[형태]

침천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측면 평면은 서쪽에 구들방 2칸통, 동쪽에 대청 4칸통으로 구성된 우실좌당형이다. 구들방 측면을 제외한 삼면 창호 밖에는 쪽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구조는 낮은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운 뒤 개방된 대청 전면을 제외하고 벽을 치고 창호를 달았다. 특히 구들방과 대청은 바닥이 한 단 높고, 대청 앞에는 계자각헌함(鷄子脚軒檻)과 출입용 나무 계단이 있다. 방에는 살문, 대청에는 판문으로 각 실의 기능에 맞춰 창호의 재료와 구성을 달리하였다. 특히 구들방과 대청 사이에는 두 짝씩 접어 들어올려 걸면 필요시 방과 대청이 한 공간으로 사용 가능한 분합문이 달려 있다.

기둥 머리에는 이익공으로 짜 처마 하중을 받았다. 익공의 외부는 머리가 위로 솟은 앙서에 연봉 조각을 위아래로 장식한 형태이고, 내부는 연봉과 같은 모양으로 장식하였다. 대청 위 지붕 가구는 전후의 기둥 위에 굽은 대량을 길게 걸었고, 등 위에 포대공을 얹어 중도리와 종량을 받았다. 대량은 기둥 밖으로 돌출된 곳에는 구름처럼 둥그스름하게 조각되어 있다. 종량 위에는 다시 널판을 사다리 모양으로 겹쳐 만든 판대공으로 종도리를 받도록 하였다.

특히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인 탓에 충량을 대량과 직교하여 결구하였는데, 충량 머리는 용머리를 실감나게 조각하여 붙였다. 충량의 등은 지붕 측면의 서까래를 받은 외기중도리를 받치고 있다. 지붕은 추녀와 덧서까래가 있는 겹처마 팔작에 한식 기와를 이었다.

[의의와 평가]

침천정은 조선 시대 관료들의 휴식처와 유상처로 이용된 관 누정이며, 사례가 매우 드물어 역사적·건축적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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