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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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尙州 伏龍洞 幢竿支柱 |
영어공식명칭 | Flagpole Supports in Bongnyong-dong, Sangju |
이칭/별칭 | 상주 복룡리 당간지주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복룡동 207-2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박병선 |
문화유산 지정 일시 | 1972년 12월 29일 - 상주 복룡동 당간지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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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상주 복룡동 당간지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상주 복룡동 당간지주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상주 복룡동 당간지주 - 경상북도 상주시 복룡동 207-2 |
성격 | 당간지주 |
크기(높이,길이,둘레) | 3.62m[높이]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상주시 |
문화유산 지정 번호 |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복룡동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당간지주.
[개설]
상주 복룡동 당간지주(尙州 伏龍洞 幢竿支柱)는 통일 신라 시대에 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한다.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경우 ‘당’이라는 깃발을 다는데, 깃발을 매달아 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양쪽에서 지탱하여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보통 당은 없고 드물게 당간이 있으나 대부분은 두 기둥만 남아 있다.
상주 복룡동 당간지주는 1972년 12월 29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으며,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이 시행됨에 따라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
[위치]
상주 복룡동 당간지주는 경상북도 상주시 복룡동 207-2번지에 있다. 상주 시내 동쪽 지역으로 동성동 행정복지센터와 상주 복룡동 유적 사이의 중앙로를 따라 대구 방향으로 가면 도로변 왼쪽에 있다. 주변에 공장 건물과 경작지가 있고, 상주 복룡동 유적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높다.
[형태]
상주 복룡동 당간지주는 높이 3.62m이다. 네모난 당간 기단은 한 변 5.5m, 높이 1.5m로 석축을 쌓았다. 위에 화강암으로 조성된 두 지주(支柱)는 바깥면의 양 모서리를 부드럽게 다듬어 놓았을 뿐 각 면에는 조각을 두지 않았다. 지주의 아랫부분에 살짝 금이 가 있고, 지주 사이에는 당간을 받치던 받침돌이 놓여 있다. 거의 사각기둥인 지주는 중간 부분에서 위로 약간 줄어들어 하단으로는 두툼해진 느낌이며 주두(柱頭)는 안쪽면 정상에 원호를 그리면서 경사를 두어 유선형으로 보인다. 지주의 내측 정상부 중앙에 깊이 13.5㎝의 간구(竿溝)를 1개씩 설치하였다. 다른 새김은 없고 하단의 매몰부도 거칠게 치석되어 있다. 당간을 세웠던 간대(竿台)는 없고 대신 3.47m의 간대석(竿臺石) 1개가 남북으로 놓여 있어서 또 하나의 당간지주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쪽의 간주는 매몰되고 남은 것만 옮겨 놓은 것이다. 간대석의 당간지주 아래쪽에 지름 35㎝, 깊이 11㎝의 홈이 패어 있고, 주위로 8엽의 단판연화문을 새겼다. 통일 신라 시대의 형태이지만 외부 새김이 생략되고 매몰부도 거칠게 치석된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로 보기도 한다.
[현황]
상주 복룡동 당간지주가 있는 지역은 과거 큰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해사사실기(東海寺事實記)」에 의하면 동방사(東方寺) 유지로도 추정된다. 『상주지(尙州誌)』의 기록에서는 현재 왕산에 봉안된 상주 복룡동 석조여래좌상과 650m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하며, 주변에서는 조선 시대의 자기, 기와 조각을 비롯하여 통일 신라 시대의 단선문, 고려 시대의 생선뼈무늬 기와 조각이 채집되는 것으로 보아 절터였음을 뒷받침하여 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상주 복룡동 당간지주는 지주에 금이 가고 투박하지만 통일 신라 시대 당간지주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