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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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尙州 伏龍洞 遺蹟 |
영어공식명칭 | Archaeological Site in Bongnyong-dong, Sangj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복룡동 230-3 |
시대 | 선사/선사,고대/고대 |
집필자 | 강재현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3년 6월 16일~2003년 9월 17일 - 상주 복룡동 유적 발굴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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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4년 8월 6일~2004년 9월 11일 - 상주 복룡동 유적 시굴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4년 8월 9일~2004년 12월 13일 - 상주 복룡동 유적 발굴 조사 |
문화유산 지정 일시 | 2007년 5월 31일 - 상주 복룡동 유적 사적 제477호 지정 |
문화유산 지정 일시 | 2010년 2월 19일 - 상주 복룡동 유적 사적 추가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상주 복룡동 유적 사적으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상주 복룡동 유적 - 경상북도 상주시 복룡동 230-3번지 일원 |
성격 | 도시 유적 |
면적 | 60,068㎡ |
소유자 | 상주시 등 |
관리자 | 상주시 |
문화유산 지정 번호 | 사적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복룡동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도시 유적.
[개설]
상주 복룡동 유적(尙州 伏龍洞 遺蹟)은 경상북도 상주 지역에서 처음으로 발굴 조사된 대규모 취락 유적으로 청동기 시대 주거지와 통일 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대규모 생활 유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2003년 6월 16일부터 9월 17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상주 복룡 2지구 주택 건설 부지 내 상주 복룡동 256번지 유적을 발굴 조사하였다. 2004년 8월 6일부터 9월 11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상주 복룡 3지구 주택 건설 사업 부지 내 유적을 시굴 조사하였다. 2004년 8월 9일부터 12월 13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상주 복룡동 아파트 건설 부지 내 상주 복룡동 230-3번지 유적을 발굴 조사하였다. 상주 복룡동 유적은 2007년 5월 31일 사적 제477호로 지정되었고 2010년 2월 19일 37필지 3만 136㎡가 추가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로 변경되었다.
[위치]
상주 복룡동 유적은 경상북도 상주시 복룡동 230-3번지 일원에 있다. 상주시의 동쪽 외곽에 해당하며, 북천과 병성천이 합류하는 삼각지점 안쪽의 충적 평야 지대에 있다.
[형태]
상주 복룡동 유적의 면적은 6만 68㎡이다. 유적 대다수는 통일 신라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적심 건물지, 우물, 수혈유구, 구상유구 등 생활 유구가 중심이다. 동일 지역에 다수의 유구가 밀집되어 분포하고 오랜 기간 축조와 폐기 등의 반복 과정을 거치면서 잔존 상태는 양호하지 않다. 통일 신라 시대 적심 건물지는 주향이 대부분 정남향이고, 장축 길이가 1,000㎝ 이상인 대형 건물지도 확인된다. 고려·조선 시대 적심 건물지는 주향이 정남향에서 동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으며, 규모는 중·소형으로 대형 건물지는 보이지 않는다. 유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혈유구는 용도에 따라 주거용과 공방, 저장, 폐기장으로 구분되며, 통일 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의 주거용 수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통일 신라 시대 주거용 수혈의 평면 형태는 대부분 말각방형을 띠며, 부뚜막 시설을 갖추고 있다. 우물은 모두 석조 우물이고 적심 건물지와 수혈 주변에 있어 취수 용도로 추정된다. 복룡동 230-3번지 유적에서 확인된 대형의 구상유구 3기는 출토 유물로 보아 1호는 고려 시대 말, 2호와 3호는 통일 신라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상주읍성 해자와 연결되는 것으로 보아 배수로로 추정된다.
[현황]
상주 복룡동 유적은 현재 유적지의 특색을 살려 역사 공원 형태의 상주시민문화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상주 복룡동 유적은 문헌 기록상으로 전하는 사벌주의 도시 공간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통일 신라 시대 지방 도시에 적용된 이방제의 실체와 복룡동에 거주하였던 다양한 계층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조선 시대 상주읍성 외곽에 조성된 취락의 모습을 복원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