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0634
한자 尙州 商山館
영어공식명칭 Sangsangwan Guesthouse, Sangju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경상대로 3123[만산동 699]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집필자 김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이전 시기/일시 1921년 - 상주 상산관 이건
이전 시기/일시 1940년 - 상주 상산관 이건
이전 시기/일시 1991년 - 상주 상산관 이건
훼철|철거 시기/일시 1526년 - 상주 상산관 소실
훼철|철거 시기/일시 1592년 - 상주 상산관 소실
훼철|철거 시기/일시 1638년 - 상주 상산관 소실
개축|증축 시기/일시 1327년 - 상주 상산관 개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639년 - 상주 상산관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666년 - 상주 상산관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775년 - 상주 상산관 단청 보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845년 - 상주 상산관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5년 - 상주 상산관 지붕 보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7년 - 상주 상산관 마당 정비 및 주변 석축 공사
문화유산 지정 일시 1982년 2월 24일연표보기 - 상주 상산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7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상주 상산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5월 17일 - 상주 상산관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지정
현 소재지 상주 상산관 - 경상북도 상주시 경상대로 3123[만산동 699]지도보기
성격 객사
양식 맞배지붕[정청]
정면 칸수 정면 3칸[정청]
측면 칸수 측면 4칸[정청]
소유자 상주시
관리자 상주시
문화유산 지정 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만산동에 있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객사.

[개설]

상주 상산관(尙州 商山館)은 고려 시대 및 조선 시대의 지방 관사인 객사이다. 객사는 기록상 고려 시대부터 존재하여 사신과 손님을 접대하고 왕정의 권위를 펴서 관아의 권위를 세우는 장소로 활용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망궐례를 행하였다. 객사는 지방 관아의 중심에 주로 있으며, 건물은 전패를 봉안한 정당 좌우로 구들방과 대청으로 구성된 익실로 구성되었다. 그 외 부속 건물로 중문, 협문 등이 있다. 지방 행정 단위 등에 따라 객사의 규모와 구조 장식 등에 차이가 있다.

상주 상산관은 1982년 2월 24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으며,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이 시행됨에 따라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

[위치]

상주 상산관은 경상북도 상주시 경상대로 3123[만산동 699]에 있다. 상주 시가지 북쪽의 북천 너머 자양산 자락 상주 임란북천전적지 초입에 있다.

[변천]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과 상주읍지인 『상산지(商山誌)』 등의 기록으로 보아 1196년 이전에 상주 상산관이 설립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327년 목사 김영후가 개건하였고, 목사 안축이 1343년 기문을 썼다. 1526년 목사 윤탕 재임 때 소실되었다가 중건하였으나 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이후 중건하였지만 1638년 목사 조계원 재임 때 화재로 다시 소실되었다. 1639년 목사 조계원이 왕산 남쪽으로 터를 옮겨 중건하였고, 1666년 목사 이송령이 예전 터에 객사를 중건하였다. 1775년 목사 정석달이 단청을 보수하였고, 1845년 목사 홍주가 중수하였다. 일제 강점기인 1907년 상주공립보통학교 교실로 사용되었다. 1921년 이건되었고, 1927년 상주여자보통학교 교실로 사용되었고, 1939년 상주여자보통학교로 이전되었다. 1940년 지역 유지들이 매입하여 농잠학교[상주여자중학교]로 이건하여 교실로 사용하였다. 1985년 해체하여 지붕을 보수하고 보호책을 설치하였다. 1991년 상주 임란북천전적지로 이전하고 바닥, 벽체, 창호, 천장 등을 복원 및 보수하였다. 1997년 마당 정비 및 주변 석축 공사 등이 있었다.

[형태]

상주 상산관은 정청을 중심으로 좌우로 구들방과 대청으로 구성된 양익실이 나란히 배열된 일자형이다. 상주 임란북천전적지의 초입 경사지에 2단으로 터를 닦고 주위는 담장을 쌓았다. 정청은 예전 전패를 봉안하던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4칸 규모에 내부는 칸막이 없이 넓은 통간이며 바닥은 우물마루이다. 좌우 익실보다 기단과 지붕을 한단 높게 설치하여 위계성을 드러냈다. 동익실은 정면 7칸, 측면 4칸 규모이고, 평면은 4칸 구들방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툇마루를 포함한 12칸의 넓은 대청이, 서쪽에는 3칸의 좁은 대청이 배열되어 있다. 서익실은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이고, 평면은 후열 3칸만 구들방이고 그 외는 우물마루의 넓은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둥은 두리기둥과 네모기둥이 모두 사용되었다. 기둥 위 결구는 정청이 이익공 형식[외부는 초익공이 앙서형, 이익공은 수서형]이고 양익실은 초익공 형식[수서형]으로 차이가 있다. 지붕 가구는 정청 측면이 3고주 7량가이다. 동익실은 대청이 2고주 7량가, 구들방이 1고주 7량이고, 서익실은 평주 7량가로 각기 다르다. 천장은 정청 및 양익실의 대청에는 서까래가 그대로 보이는 연등천장이고, 구들방에는 우물반자이다. 지붕은 정청이 서까래와 부연의 겹처마에 기와를 이은 맞배이다. 하지만 양익실의 지붕은 정청 쪽만 맞배이고, 맞은편은 팔작이다. 지붕 각 마루 끝에는 용머리기와로 장식하여 관사의 품격과 격식을 상징화하였다.

[의의와 평가]

상주 상산관은 조선 시대 관사의 건축적 특성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전체 평면 형식은 일반적이나 양익실의 평면은 비대칭 형식이며 정청에 대하여 기단, 지붕 가구, 지붕 등 건축 구성에서 뚜렷한 위계성을 부여하였다. 또한 현존 객사 중 대규모로서 거읍의 상징성이 반영되었고 객사에는 볼 수 없는 지붕 마루에 수작의 용두가 장식된 점 등이 주요 특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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