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6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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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尙州 養眞堂 |
영어공식명칭 | Yangjindang House, Sangj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양진당길 27-4[승곡리 214-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찬영 |
건립 시기/일시 | 1626년 - 상주 양진당 착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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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628년 - 상주 양진당 완공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07년 - 상주 양진당 보수 |
문화유산 지정 일시 | 2008년 7월 10일 - 상주 양진당 보물 제1568호 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32년 - 상주 양진당 옥류정 건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57년 - 상주 양진당 화재로 사묘 소실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66년 - 상주 양진당 수해로 사랑채와 중문간 소실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0년 - 상주 양진당 해체 보수 및 정밀 실측 조사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2년 - 상주 양진당 종합 정비 계획 수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4년 - 상주 양진당 중문간, 사랑채, 사묘 지역 조사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0년 - 상주 양진당 건물 터 발굴 조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상주 양진당 보물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상주 양진당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양진당길 27-4[승곡리 214-3] |
성격 | 고택 |
정면 칸수 | 9칸[본채] |
측면 칸수 | 7칸[본채] |
소유자 | 풍양 조씨 장천파 문중 |
관리자 | 풍양 조씨 장천파 문중 |
문화유산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고택.
[개설]
상주 양진당(尙州 養眞堂)은 검간(黔澗) 조정(趙靖)[1555~1636]이 임진왜란 때 불탄 옛 선조의 집터에 제선(祭先), 목인(睦婣), 교양(敎養) 등의 유교 사상 실천과 이상향의 터전으로 삼기 위하여 1628년 건립한 종가이다. 당호는 조정이 평생 실천하고자 한 제선, 목인, 교양 등 본성을 성실히 지켜 자연의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양진당(養眞堂)’이라고 명명하였다. 2008년 7월 10일년 보물 제156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보물로 변경되었다.
[위치]
상주 양진당은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양진당 마을에 있다. 양진당은 갑장산 동록에서 분기하여 낙동강 지류인 장천으로 뻗은 ‘물(勿)’ 자형 구릉의 말단부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변천]
「양진당중수기」에 따르면 조정이 72세 때인 1626년에 착공하여, 1628년에 완공하였다. 장남 조기원이 감독을 맡았으며, 『가례』의 지침에 따라 사묘부터 짓고 그다음으로 정침 및 낭무, 층헌, 복방, 병실, 자사, 양진당 등 100여 칸을 건립하였다. 1807년(순조 7)에 문중 일족이 모은 돈으로 가묘부터 수리하고, 그 다음으로 정침, 낭무, 양진당의 낡은 부재를 교체하였으며, 창호는 출입 동선에 맞추어 위치 및 개폐 방식을 바꾸었다. 또 종족 화합의 장으로 사용하던 대청을 넓혔고, 추녀와 지붕 가구도 고쳤다.
상주 양진당은 1932년에 양진당을 이건하여 옥류정으로 건축하였다. 1957년 화재로 사묘가 소실되었고, 1966년에는 수해로 사랑채와 중문간이 소실되어 ‘ㄇ’ 자형 본채만 남아 보존되었다. 1980년에 해체 보수 및 정밀 실측 조사에 따라 1981년에 복원 보수가 있었다. 2002년 종합 정비 계획 수립과 함께 2004년과 2010년 멸실된 건물 터에 발굴 조사가 있었다. 2004년 본채 전방의 중문간·사랑채·사묘, 2010년에 사묘 전방 지역을 조사하였다. 2004년에 조사된 중문간, 사랑채, 사묘는 조사에서 확인된 유구, 문중 고증, 관계 전문가의 자문 등을 거쳐 복원·정비되었다. 2010년 조사에서는 임진왜란 때 불탄 집터[정면 3칸, 측면 1칸] 흔적과 추정 주포지(廚庖址)의 적심, 양진당[정면 4칸, 측면 2칸]이 확인되었다. 2023년 현재 ‘□’자형 본채와 사묘가 복원·정비되었고 화장실, 관리소 등의 부대 시설을 갖추었다.
[형태]
상주 양진당 관련 문헌 및 학술 조사 등을 통하여 볼 때, 양진당은 임진왜란 때 불탄 옛 선조의 집터에 새로 지은 종가이다. 갑장산 말단 구릉을 배후로 전방의 장천을 부감하는 배산임수한 터의 서쪽에 사묘 영역, 동쪽에 본채 영역으로 구성되었다. 본채는 안채와 안채 전방에 중문간·사랑채가 안마당을 에워싼 폐쇄적인 ‘□’자형 남향 뜰집형이다. 사묘 영역은 외삼문의 출입문에 사당을 일직선상에 남향 배치하고 주위에 담장을 쌓아 별도의 영역으로 구성하였다. 사묘 전방으로는 제수를 준비하는 주포, 양진당이 있다. 양진당은 문중 행사 및 학문 연구, 제청, 접객 기능의 별당으로 추정된다
[현황]
상주 양진당은 2023년 현재 ‘□’자형 본채, 사묘, 화장실, 관리소가 있다. 본채는 정면 9칸, 측면 7칸의 약 50여 칸으로 정침을 중심으로 양익사, 중문간 및 사랑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마당에 면한 정침은 1.5층에 동쪽으로 6칸의 넓은 대청과 끝에 구들방, 서쪽으로는 4칸의 부엌과 6칸의 구들방이 겹으로 배열되어 대청과 연결된다. 정침은 전면에 좁은 퇴를 두고 양끝에 나무 계단을 설치하여 출입한다. 양익사는 2층 구조이며 부엌 위에는 주로 수장 공간이 고방이 구성되어 있다. 중문간 및 사랑채는 중문간을 중심으로 서쪽에 마구간, 방앗간, 구들방 2칸, 동쪽으로는 사랑방 2칸에 사랑 대청 2칸이 일렬로 구성되어 있다. 사묘는 남쪽 담장에 설치한 외삼문 북쪽에 정면 3칸, 측면 1.5칸이 구성되어 있다. 사묘 전방으로 넓은 공간은 2010년 발굴 시 확인된 주포지와 양진당 터이며, 당시 발굴 유구는 현지 보존되었다.
[의의와 평가]
상주 양진당은 조선 후기 문신인 조정이 말년에 임진왜란 때 불탄 옛 선조의 집 터에 건립한 풍양 조씨 대종가이다. 배치 및 건물 구성에서 당시 영남 지역 상류 주택의 특성을 수용하되 건축주의 사상 및 종가라는 건축 기능과 의도가 곳곳에 잘 반영된 독특한 주택이다. 아울러 관련 문헌을 통하여 조선 후기 종가의 건립 과정 및 보수와 운영 방식도 살펴볼 수 있는 주거사적으로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