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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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靖 |
영어공식명칭 | Cho Jung |
이칭/별칭 | 안중(安中),검간(黔澗)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555년 - 조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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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조정 임진왜란 때 창의 |
활동 시기/일시 | 1599년 - 조정 희릉참봉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03년 - 조정 군기시주부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03년 - 조정 진사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605년 - 조정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07년 - 조정 경주제독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08년 - 조정 해남현감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11년 - 조정 청도군수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23년 - 조정 김제군수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24년 - 조정 이괄의 난 때 인조 호종 |
활동 시기/일시 | 1626년 - 조정 형조정랑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27년 - 조정 봉상시정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636년 - 조정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730년 - 조정 속수서원 배향 |
추모 시기/일시 | 1759년 - 조정 재사인 상주 승곡리 추원당 건립 |
출생지 | 상주 - 경상북도 상주시 |
거주|이주지 | 상주 - 경상북도 상주시 |
활동지 | 상주 - 경상북도 상주시 |
활동지 | 해남현 - 전라남도 해남군 |
활동지 | 김제군 - 전라북도 김제시 |
묘소 | 조정 묘소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봉상시정 |
[정의]
조선 후기 상주 출신의 문신.
[가계]
조정(趙靖)[1555~1636]의 본관은 풍양(豊壤)이며, 자는 안중(安中), 호는 검간(黔澗)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춘천부사 조윤녕(趙允寧)이고, 할아버지는 조희(趙禧)이다. 아버지는 조광헌(趙光憲)이고, 어머니는 찰방 홍윤최(洪胤崔)의 딸 남양 홍씨(南陽 洪氏)이다. 부인은 성주목사 김극일(金克一)의 딸 의성 김씨(義城 金氏)이고, 아들은 조기원(趙基遠)·조영원(趙榮遠)이다. 동생은 조익(趙翊)·조굉(趙竤)·조준(趙竣)이다.
[활동 사항]
조정은 1555년(명종 10) 상주에서 태어났다. 정구(鄭逑)와 김성일(金誠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권경호(權景虎)·정경세(鄭經世)·이홍도(李弘道)·채유희(蔡有禧) 등과 함께 함창 황령사에서 의병을 일으켜 참모와 서기를 맡았다. 1596년 왜군이 재침할 조짐이 있자 상소를 올려 왕의 친정(親征)을 청원하고 일본과의 강화를 배격하였다.
조정은 1599년 천거로 희릉참봉에 제수되었고, 1603년 군기시주부가 되고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605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어 사헌부감찰·북평사·예조좌랑·대구판관을 역임하였다. 1607년 경주제독을 거쳐 1608년 해남현감으로 부임하였으며, 해남현감 재임 중 공납의 폐단을 바로잡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1611년(광해군 3) 공홍도도사·청도군수로 부임하였으나 광해군 대에 북인(北人)이 권력을 잡으면서 정국이 어지러워지자 낙향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조정은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이후 김제군수(金堤郡守)로 부임하였고, 1624년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인조를 공주까지 호종하였다. 1626년 형조정랑·통례원상례·사섬시정을 거쳐 1627년 봉상시정에 올랐다. 1632년 군자감정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1636년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조정의 문집으로 4권 4책의 『검간집(黔澗集)』이 전한다. 임진왜란 중에 작성된 편지와 상소문, 통문(通文) 등이 수록되어 있어 전황을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 외에도 1592~1597년 임진왜란 당시 겪은 일을 손수 기록한 일기로서 『임진일기(壬辰日記)』, 『남행록(南行錄)』, 『진사록(辰巳錄)』, 『일기 부 잡록(日記 附 雜錄)』, 『서행일기(西行日記)』, 『문견록(聞見錄)』이 남아 있다.
[묘소]
조정의 묘소는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에 있으며, 정온(鄭蘊)이 묘갈명을 썼다.
[상훈과 추모]
조정은 사망한 뒤 이조참판에 증직되었으며, 1730년(영조 6)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주속길 116-6[속암리 78]에 있는 속수서원(涑水書院)에 배향되었다. 1759년에는 지금의 상주시 낙동면 양진당길 59-15[승곡리 237]에 재사(齋舍)인 상주 승곡리 추원당(尙州 升谷里 追遠堂)[경상북도 기념물]이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