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6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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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尙州 依巖古宅 |
영어공식명칭 | Uiam House, Sangj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운평2길 42-7[운평리 141-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찬영 |
건립 시기/일시 | 1800년경 - 상주 의암고택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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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10년 - 상주 의암고택 증축 및 개축 |
문화유산 지정 일시 | 1986년 12월 11일 - 상주 의암고택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77호 지정 |
문화유산 해지 일시 | 2012년 10월 22일 - 상주 의암고택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지정 해지 |
문화유산 지정 일시 | 2012년 10월 22일 - 상주 의암고택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53호 승격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상주 의암고택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상주 의암고택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으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상주 의암고택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운평2길 42-7[운평리 141-1] |
성격 | 고택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6.5칸[안채] |
측면 칸수 | 2칸[안채] |
소유자 | 조준희 |
관리자 | 조준희 |
문화유산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운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종택.
[개설]
상주 의암고택(尙州 依巖古宅)은 풍양 조씨 검간종파 극암(克庵) 조식(趙栻)[1774~1837]의 종택이며, 안채, 사랑채, 도장채, 뒤주채, 사당, 대문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임당 연안 이씨[1749~1826]가 34세 때 남편 조형연[1750~1783]과 사별하고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큰아들 조식과 함께 1800년경 안채를 포함한 내외 두 채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상주 의암고택은 병인양요 때 류주목[1813~1872]과 더불어 상주 지역 의병을 조직하였던 유학자 의암 조범구의 호를 딴 당호이다.
상주 의암고택은 1986년 12월 11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77호로 지정되었고, 2012년 10월 22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가 지정 해지되었다. 같은 날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53호로 승격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변경되었으며,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이 시행됨에 따라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
[위치]
상주 의암고택은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운평2길 42-7[운평리 141-1]에 있다. 풍양 조씨 세거지로 일명 ‘갈가실’이라고도 하는 마을 복판에 있다. 조위경(趙緯經)이 지은 「운곡세장기」에 의하면 조희(趙禧)[1507~1587]가 1565년 운곡마을에 처음 터를 잡았다고 한다. 백원산 정상의 국사봉으로부터 좌우로 뻗은 산줄기가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데, 이러한 지형을 삼태기혈이라 하여 예로부터 부가 끊이지 않는다는 풍수설이 전한다.
[변천]
상주 의암고택은 1800년경 안채를 포함한 두 채를 건립하였고, 1820년경 사랑채[일우당]를 건립하였다. 1910년 조남극의 큰아들 조태연[1877~1934]이 기존의 건물을 허물고 새롭게 증축 및 개축하였다.
[형태]
상주 의암고택은 마을 가운데 넓은 대지에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ㅡ’ 자형 안채와 ‘ㄴ’ 자형 중문간 및 사랑채, ‘ㄴ’ 자형 곳간채가 튼 ‘□’ 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사랑채 북쪽에 별도의 담장을 갖춘 사당이 있다.
[현황]
상주 의암고택의 안채는 정면 6.5칸, 측면 2칸 규모에 ‘ㅡ’ 자형 팔작 기와집이다. 평면은 좌측부터 부엌, 안방, 대청, 상방 순으로 배열된 ‘ㅡ’ 자형이다. 부엌을 제외한 전면 전체에는 툇마루, 대청 2칸과 안방 1칸 후면에는 각각 쪽마루가 시설되어 있다. 특히 상방은 난방용 함실아궁이가 앞문 밖에 설치되어 툇마루는 대청보다 한 단 높게 평난간과 함께 설치되어 있다. 안방 1칸과 상방 뒷벽에는 반침, 부엌에는 안방에서 이용하는 다락 등 수장 공간이 알차게 설치되어 있다. 구조는 자연석 기단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부엌과 대청 뒷벽에는 판벽과 널문, 널창을 달고, 이외에 구들방은 한식 토벽에 살문을 달았다. 대청의 지붕 가구는 오량가로 중도리 위에 사다리꼴 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았다. 대청 뒷벽에 ‘모임당’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상주 의암고택의 사랑채는 정면 7칸, 측면 6칸의 ‘ㄴ’ 자형에 팔작 기와집이다. 평면은 서쪽부터 책방, 사랑방 2칸, 마루방 2칸, 작은사랑방 1칸, 아자형 난간이 설치된 툇마루가 ‘ㅡ’ 자형으로 배열되어 있다. 사랑방 북쪽으로는 침방과 툇마루, 중문간, 뒷벽에 수장 공간이 있는 구들방, 마루방 등 중문채가 연달아 이어지는데, 좌향은 남향인 사랑채와 달리 동향이다. 책방 뒤에는 사랑방에서 이용하는 다락이 있고, 밑에는 방 난방을 위한 사랑부엌이 있다. 사랑채 각 실의 전면 처마 밑에는 4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사랑방 앞에는 ‘의암고택’, 1910년 사랑채를 개축하고 쓴 ‘일우당’, 마루방 앞에는 2009년 중문채 다락방에서 발견된 ‘만한당’, 작은사랑방 앞에는 국은 조동계의 호인 ‘국은’이 걸려 있다.
고방채는 도장방, 방앗간, 고방, 마구 등 6칸이 ‘一’자형으로 배열되고, 도장방 북쪽으로 연이어 마루 1칸과 뒷벽에 벽장이 있는 구들방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조는 자연석 기단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운 뒤 고방, 방앗간 등 수장 가사 작업 공간 등에는 판벽에 널문을 달았고, 구들방은 한식 토벽에 살문으로 각 실의 기능에 따라 벽체와 창호의 재료와 구조를 달리하였다. 지붕 가구는 간소한 민도리형식에 삼량가이다. 지붕은 남쪽은 팔작, 북쪽은 맞배에 한식 기와를 이었다.
사당은 사랑채 북쪽 대지 끝에 별도의 토석 담장을 쌓아 전면에 일각문을 내어 출입하며, 뒤로 정면 3칸, 측면 1.5칸의 사당이 남향한다. 사당은 자연석 기단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은 전면에 전돌이 깔린 개방된 두리기둥을 세운 초익공 형식의 퇴가 있으며, 본체는 네모기둥에 민도리형식으로 꾸미고 내부는 통칸에 우물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본체 전면 각 칸에만 판벽에 널문을 달았고, 나머지는 화방벽이다. 지붕은 맞배에 한식 기와를 이었다. 상주 의암고택의 대문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이고, 평면은 대문간을 중심으로 동쪽에 고방, 헛간, 서쪽에 문간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조는 자연석 기단과 주춧돌에 네모기둥을 세운 민도리형식의 삼량가 우진각 기와집이다.
[의의와 평가]
상주 의암고택은 조선 후기에서 근대기에 이르는 상류 주택의 건립과 후대 증·개축에 따른 시기적 변화와 건축적 특성을 살필 주거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