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6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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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尙州 曾村里 石造如來坐像 |
영어공식명칭 | Stone Seated Buddha in Jeungchon-ri, Sangju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증촌2길 10-13[증촌리 258-3]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배상현 |
문화유산 지정 일시 | 1963년 1월 21일 -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120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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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좌상 보물로 변경 지정 |
현 소장처 | 용화사 -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증촌2길 10-13[증촌리 258-3] |
성격 | 불상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 높이 259㎝[전체]|높이 168.8㎝[불상]|높이 90.4㎝, 너비 164㎝[대좌]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상주시 |
문화유산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증촌리 용화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불상.
[개설]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좌상(尙州 曾村里 石造如來坐像)은 통일 신라 시대에 제작되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8교구 직지사의 말사인 용화사(龍華寺)의 약사전(藥師殿)에 봉안되어 있다. 원래 석탑이 있던 용화사 동북쪽에 있었다고 전하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용화사는 676년(문무왕 16)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한 것으로 전하지만, 현존하는 문헌 기록이 없어 창건 당시 모습이나 사적(寺蹟)에 대하여 파악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다만 현재의 용화사를 건립하면서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좌상이 이안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용화사 약사전에는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좌상과 함께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입상이 서쪽을 향하여 나란히 봉안되어 있다.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좌상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2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보물로 변경되었다.
[형태]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좌상의 두부는 방형에 가까우며, 정상에 있던 육계는 파손되었다. 눈은 가늘게 뜬 모습이다. 코는 사다리꼴 모양으로 뭉툭한 형태이며, 입술은 도톰하게 표현되었다. 목에는 삼도가 있으며, 가슴과 팔 부분이 통통하며 불신은 전체적으로 양감이 있는 형상이다. 법의는 통견이며, 가슴을 ‘U’자형으로 깊게 팠다. 왼쪽 어깨 뒤로 넘긴 옷자락은 물결 모양으로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촉지인(觸地印)을 하고 있으며, 왼손은 복부 앞에서 약합(藥盒)을 받치고 있다. 대좌는 팔각으로 상중하 3단으로 조성되었으며, 각 부재는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지대석은 확인되지 않는다. 대좌를 포함한 전체 높이는 259㎝이며, 불상 높이 168.8㎝, 두부 높이 83.3㎝, 무릎 높이 26.5㎝, 대좌 높이 90.4㎝이고, 두부 너비 41.6㎝, 어깨 너비 84㎝, 무릎 너비 135.1㎝, 대좌 최대 너비 164㎝이다.
[특징]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좌상의 광배는 결실되었고, 3단 연화 대좌가 남아 있다. 두부는 절단된 것을 다시 붙인 흔적이 있으며, 머리 정면과 이마 부위에도 보수한 흔적이 있다.
[의의와 평가]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좌상 불신의 세부 표현은 통일 신라 시대에서 고려 시대 양식으로 옮겨 가는 불상의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좌상은 조각 수법과 각부 양식으로 미루어 8세기 후반에서 9세기대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