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6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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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尙州 聽澗亭 |
영어공식명칭 | Cheongganjeong Pavilion, Sangj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운평리 15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찬영 |
건립 시기/일시 | 1650년 경 - 상주 청간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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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지정 일시 | 2009년 10월 12일 - 상주 청간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58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상주 청간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상주 청간정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상주 청간정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운평리 154 |
성격 | 누정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5칸 |
소유자 | 풍양 조씨 장천제일파 문중 |
관리자 | 풍양 조씨 장천제일파 문중 |
문화유산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운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누정.
[개설]
상주 청간정(尙州 聽澗亭)은 가곡(柯谷) 조예(趙秇)[1608~1661]가 1650년경 건립하여 자연을 벗삼아 학문을 닦던 곳이다. 풍양 조씨 집성촌인 운평리 운곡마을에 있는 연당형 누정이자 호군공파 검간공 자손들의 학문 장소이다. ‘청간’은 ‘골짜기에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또한 마음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는 뜻으로 누정의 건립 취지와 기능을 엿볼 수 있다.
『상산지』에는 “청간정은 주남 운곡에 사용(司勇) 조예가 세웠으니 단상에 은행이 쌍취하고, 정전에 석천이 장명하며, 사예 조정융이 시를 쓰고 현판을 걸었다”라고 적고 있다.
상주 청간정은 2009년 10월 12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5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으며,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이 시행됨에 따라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되었다.
[위치]
상주 청간정은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운평리 154번지에 있다. 운평리 운곡마을 북쪽 끝의 개천가에 있다. 운곡은 백원산 정상의 국사봉으로부터 좌우로 뻗은 산줄기가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이러한 지형을 삼태기형이라 하여 예로부터 마을에 부가 끊이지 않는다는 풍수설이 전한다.
[변천]
상주 청간정은 건립 이후 19세기에 중수가 있었으며, 건립 당시의 규모와 형식이 잘 유지되었다.
[형태]
상주 청간정의 건물은 3칸 ‘一’ 자형의 반중층형 정자와 정자 주위로 쌓아 돌린 토석담 전면의 출입문인 사주문, 서쪽과 동쪽에 각기 협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쪽 협문 밖에는 상주시 보호수인 수령 500년의 은행나무와 작은 연지가 있고, 동쪽 협문 밖에는 3칸 ‘一’ 자형의 고직사가 남아 있다.
상주 청간정의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아담한 규모에 팔작 기와집이며, 산을 등지고 전방의 개천을 비롯한 주변의 산야를 바라보며 남서향한다. 입지한 경사지의 지세를 그대로 이용하여 2단으로 터를 닦아 건물을 앉혔다. 평면은 서쪽부터 마루 1칸, 구들방 2칸을 일렬로 배열하였고, 마루와 구들방 앞 전체에는 퇴칸에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특히 퇴칸은 자연석 기단 아랫단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위에 짧은 누하주와 누상주를 차례로 세웠는데, 누상주는 민도리 형식이다. 기단 윗단에 설치된 본체는 얕은 자연석 기단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주상부는 역시 민도리 형식이다. 툇마루는 마루와 같은 우물마루이고, 툇기둥 밖에는 계자각헌함이 설치되어 있다. 정자 전면이 누하주가 있는 반중층인 탓에 출입은 동쪽 툇칸을 통하여 실내로 드나드는 측입 형식이다. 마루는 전면을 개방하고 서쪽과 북쪽의 기둥 사이에는 머름중방을 걸고 위에 판벽을 치고 쌍여닫이 울거미띠장널창을 달았고, 구들방 샛벽에는 삼분합들문을 달아 필요시 방과 마루가 한 공간으로 이용될 수 있도록 하였다. 구들방은 한식 토벽으로 남쪽의 전면에는 기둥 사이에 머름중방과 상인방을 상하로 걸고 사이의 중앙에 문설주을 세워 쌍여닫이 살창을 달고, 동쪽과 북쪽 벽에는 하인방 위에 외여닫이 살문을 달았다. 지붕 가구는 오량가에 팔작지붕인 탓에 충량을 대량과 직교하여 걸었고, 위에 추녀와 서까래를 받는 외기중도리를 받도록 하였다.
상주 청간정 동쪽 방 위에는 ‘청간정’, 마루 위에는 ‘익암서당’, 가운데 방 위에는 ‘조씨가숙’ 현판이 걸려 있다. 그중 ‘청간정’과 ‘익암서당’의 글씨는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의 친필이라 전한다.
[현황]
상주 청간정의 건물은 주로 후학을 위한 강학소로 사용되었으며, 영남의 저명한 유림 인사들이 모여서 시회(詩會)를 열고는 하였다. 현재는 조예의 묘하 재사(墓下 齋舍)로 이용되며, ‘익계(益契)’라는 수계소가 있다.
[의의와 평가]
상주 청간정은 조선 후기 문중 정자의 기능 및 공간과 건축적 구성을 엿볼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