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6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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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愚伏鄭經世神道碑 |
영어공식명칭 | Stele of Jeong Gyeong-s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부곡리 27-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창국 |
건립 시기/일시 | 1758년 - 우복정경세신도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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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563년 - 정경세 출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633년 - 정경세 사망 |
문화유산 지정 일시 | 2000년 12월 4일 - 우복정경세신도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21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우복정경세신도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우복정경세신도비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우복정경세신도비 -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부곡리 27-3 |
성격 | 신도비 |
관련 인물 | 정경세 |
재질 | 석재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높이 373㎝[전체]|높이 65㎝, 너비 195㎝, 두께 256.5㎝[귀부]|높이 222.5㎝, 너비 103.5㎝, 두께 상 24.5㎝, 두께 하 24㎝[비신]|높이 85㎝, 너비 142㎝, 두께 66㎝[이수] |
소유자 | 진주 정씨 종중 |
관리자 | 진주 정씨 종중 |
문화유산 지정 번호 |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부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정경세의 신도비.
[개설]
우복정경세신도비(愚伏鄭經世神道碑)는 문신 정경세(鄭經世)[1563~1633]를 기리기 위한 신도비이다. 정경세는 상주 출신으로 본관은 진주, 호는 우복이다. 류성룡의 문인으로 예조판서·이조판서·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장(文莊)이며, 저서로는 『우복집(愚伏集)』, 『상례참고(喪禮參考)』가 있고, 상주 도남서원, 대구 연경서원, 강릉 퇴곡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우복정경세신도비는 2000년 12월 4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2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으며,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이 시행됨에 따라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
[건립 경위]
우복정경세신도비는 정경세의 생애와 학문적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1758년(영조 34) 건립되었다. 비는 증손 정석교(鄭錫僑)가 경상감사 이명준(李命俊)으로부터 기증받은 남포석(藍浦石)에 비각(碑刻) 작업을 하였으나 세우지 못하였고, 6대손 정종로(鄭宗魯)가 마무리하였다.
[위치]
우복정경세신도비는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부곡리 27-3번지에 있다. 부곡리에 있는 공검초등학교 정문 서북쪽으로 직선거리 약 300m 지점에 보호각이 있는데, 보호각 안에 신도비가 있다.
[형태]
우복정경세신도비는 귀부·비신·이수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수와 귀부는 화강암이고 비신은 화강섬록암이다. 이수는 직육면체 형태로 아랫면에는 3개의 음각선을 일정한 간격으로 새겼다. 귀부는 발과 꼬리가 생략된 형태로 옆면을 각지게 다듬었다. 전체 높이는 약 373㎝이고, 귀부는 높이 65㎝, 너비 195㎝, 두께 256.5㎝이다. 비신은 높이 222.5㎝, 너비 103.5㎝, 두께는 상 24.5㎝, 하 24㎝이다. 이수는 높이 85㎝, 너비 142㎝, 두께 66㎝이다.
[금석문]
우복정경세신도비의 찬자(撰者)는 조경(趙絅), 서자(書者)는 이동표(李東標), 전자(篆者)는 권규(權珪), 추기(追記)의 서자는 6대손 정종로, 각자(刻者)는 미상이다. 비문은 각 면에 모두 새겨져 있으며, 제액은 비신 전면 상부에 가로로 ‘정헌대부 이조판서 증의정부좌찬(正憲大夫 吏曺判書 贈議政府左贊)’, 후면에 ‘성시문장공 우복 정선생 신도비명(成諡文莊公 愚伏 鄭先生 神道碑銘)’이 새겨져 있다. 비신 전면의 전액 아래에는 세로로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먼저 ‘유명조선국 증숭정대부 의정부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세자이사 지경연춘추관성균관사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시문장공 행정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경연의금부춘추관성균관사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세자좌빈객 우복 정선생 신도비명 병서(有明朝鮮國 贈崇政大夫 議政府左贊成 兼 判義禁府事世子貳師知經筵春秋館成均館事 弘文館大提學 藝文館大提學 諡文莊公 行正憲大夫 吏曺判書 兼 知經筵義禁府春秋館成均館事 弘文館大提學 藝文館大提學 世子左賓客 愚伏 鄭先生 神道碑銘 并序)’, 그다음은 찬자·서자·전자·본문 순으로 후면까지 이어진다. 우측면은 추기이며, 마지막에 ‘숭정기원후 백삼십이년 무인하사월 일필 각수묘(崇禎紀元後 百三十二年 戊寅夏四月 日畢 刻竪墓)’가 새겨져 있다. 비문은 정경세의 생애·학문·성품·가족 관계 등에 관한 내용이며, 비문은 『우복집』 권9 「우복정선생신도비명」에도 실려 있다.
[현황]
우복정경세신도비는 비신과 이수 사이가 약 1㎝ 정도 벌어져 있으며, 비신 각 면의 중간 부분에 사선으로 크게 금이 가 있다. 비신 우측면은 아래에서 80㎝ 부근 표면이 일부 파손되어 정확한 글자를 확인할 수 없다. 전체적인 비의 상태는 양호한 편이며, 비문은 약간의 마모가 있으나 관찰이 가능한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우복정경세신도비는 경상북도 상주 지역에서 비문이 가장 긴 것이 특징이며,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역사·서지학적으로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보호각 서쪽의 묘소와 외서면 우산리의 상주 우복 종택과 함께 정경세의 생애를 알려 주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