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0717
한자 慶尙道續撰地理誌 尙州道
영어공식명칭 Sangju Road of Gyeongsangdosokchanjiriji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재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469년연표보기 - 『경상도속찬지리지』 「상주도」 편찬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지리지
저자 이맹현(李孟賢)|주백손(朱伯孫)|장계이(張繼弛)|조욱(趙昱)
간행자 김겸광(金謙光)
권책 1책 73장
행자 28행 자수 부정(字數 不定)
규격 77.5㎝[세로]|41.5㎝[가로]
권수제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

[정의]

1469년에 편찬된 경상도 상주목함창현 지리지.

[개설]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는 『팔도지리지』 속찬 사업 중이던 1469년(예종 1) 경상감영에서 편찬한 경상도 지리지이다. 『경상도속찬지리지』 「상주도(尙州道)」에는 상주목함창현 관련 기록이 실려 있다.

[저자]

『경상도속찬지리지』는 1469년 경상도 관찰사 김겸광(金謙光)이 왕명으로 편찬한 경상도 도지(道誌)이다. 김겸광이 쓴 서문에 의하면, 1469년 3월 경상감사는 각 도에 내린 ‘전지(前志) 속찬(續撰)’의 윤음을 받은 뒤, 김해부사 이맹현(李孟賢), 경주교수 주백손(朱伯孫), 성주교수 장계이(張繼弛), 안동교수 조욱(趙昱)을 동원하여 1질을 완성하여 중앙에 바치고, 또 부본(副本) 4부를 제작하여 경주·상주·안동·진주의 계수관(界首官) 4곳에 보관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팔도지리지』 편찬 사업은 1424년(세종 6) 11월부터 시작하였는데, 당시 각 고을에서는 중앙정부에서 내린 수록 규정대로 고을 단위의 읍지를 만들었다. 도에서는 여러 고을에서 편찬한 읍지들을 수집, 수정·보완하여 도지를 완성하였으며, 중앙 정부에서는 팔도의 도지를 모아 최종적으로 체계 있게 정리하였다. 약 7년 정도가 지난 1432년 1월 19일 『팔도지리지』를 완성하였으며, 세종 사후 일부 내용을 수정·보완하여 『세종실록』의 일부를 구성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1425년의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와 1454년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는 조선 초기 전국 읍지 편찬 과정에서 나온 도별 읍지와 전국 읍지이며, 경상감사 김겸광 서문에 나오는 ‘전지’에 해당한다.

예종 대와 성종 대의 『팔도지리지』 속찬 과정에서도 세종 대와 같은 과정을 거쳤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은 성종 대의 『(속찬)팔도지리지』에 시문을 추가하면서 수록 항목을 재정비한 것이다. 『경상도속찬지리지』 지리지속찬사목(地理誌續撰事目)에 1430년 이후 주진(州鎭) 설립과 혁파를 기술하라는 규정이 실린 것을 보면, 『팔도지리지』 속찬은 『세종실록지리지』 편찬 이후의 변화를 반영하려고 한 것이다.

『경상도속찬지리지』 「상주도」 원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일제 강점기인 1938년 중추원 조사과에서 교정본(校訂本)을 출판하였다.

[형태/서지]

『경상도속찬지리지』는 필사본이며 1책 67장이다. 세로 71.5㎝, 가로 41.5㎝의 매우 큰 책이다. 긴 쇠 조각을 대고 국화동 5개, 박을정 5개로 변철 장정하였다. 표지는 원래 검푸른 포(布)였는데, 2023년 현재는 개장(改裝)된 상태이다. 본문은 두꺼운 저지(楮紙)이며, 많이 부식되어 장마다 배접하였으며, 마지막 5장은 각 면별로 절반 정도가 떨어져 나갔다. 『경상도속찬지리지』 「상주도」상주목은 분량이 5면, 함창현은 1면 정도이다.

[구성/내용]

『경상도속찬지리지』 「상주도」에는 계수관인 상주목을 비롯하여 성주목, 선산부, 합천군, 초계군, 김산군, 용궁현, 함창현, 문경현, 지례현, 고령현, 개령현 순으로 12개 고을이 실려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의 호구·성씨·토의(土宜)·공부(貢賦)를 생략하였으며, 진도(津渡)·교량(橋梁)·정도(程途)·원우(院宇) 등 교통 관련 항목이 증가하였고, 수령명현(守令名賢)·정려(旌閭)·누대(樓臺)·누제(樓題) 등을 신설하였다. 『경상도속찬지리지』는 경상도 67개 고을을 경주도(慶州道), 안동도(安東道), 상주도(尙州道), 진주도(晉州道)의 네 구역으로 분속하여 차례로 기록하였다. 『경상도지리지』와 『세종실록지리지』처럼 계수관별로 편성하였지만, 고을 수록 순서가 같지는 않다. 1457년(세조 3) 폐읍된 순흥도호부를 빼고, 1437년 분리한 곤양군과 남해현, 1452년경(문종 2)에 복설한 웅천현을 실어 모두 67개 고을이다.

상주목의 주요 항목을 보면, 수령명현에 이인손(李仁孫), 참역에 낙양역·낙동역·낙원역·낙서역·낙평역을 실었다. 유명누대(有名樓臺)에 풍영루·관수루를 수록하였는데, 풍영루 제영에는 이숭인·하륜·박원형, 관수루 제영에는 정설(鄭枻)의 시를 실었다. 함창현 수록 항목은 공세(貢稅), 제언(堤堰), 연대봉화(煙臺奉化), 참역(站驛), 유명영현(有名嶺峴), 종양약재(種養藥材), 어량(魚梁), 도기소(陶器所), 정도(程途), 원우(院宇)뿐이다. 제언에는 공검지(恭儉池)가 보이지 않는데, 가장 넓은 현남제(縣南提)는 관개 면적이 50결 3부이다.

[의의와 평가]

『경상도속찬지리지』 「상주도」는 조선 전기 전국 지리지인 세종 대 『팔도지리지』에서 성종 대 『동국여지승람』의 변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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