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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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尙州牧 |
영어공식명칭 | SangJu-mo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병훈 |
변천 시기/일시 | 1895년 - 상주목에서 상주군으로 개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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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지방 행정 구역 |
관련 문헌 | 『고려사(高麗史)』|『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여지도서(輿地圖書)』|『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영남읍지(嶺南邑誌)』|『상산지(商山誌)』|『상주목읍지(尙州牧邑誌)』|『상주군읍지(尙州郡邑誌)』 |
[정의]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경상북도 상주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개설]
상주목(尙州牧)은 1018년(고려 현종 9)부터 1895년(조선 고종 32)까지 불렸던 상주의 행정 구역이다. 상주목은 행정과 교통, 군사의 중심지였다.
[명칭 유래]
상주(尙州) 라는 명칭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사벌주에서 개명하여 처음 불렸다. 524년(신라 법흥왕 11) 상주(上州)가 설치되고 군주가 파견되었을 당시의 명칭을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776년(신라 혜공왕 12) 다시 사벌주로 부르다가 940년(고려 태조 23) 다시 상주로 개칭하였다. 이후 1012년(고려 현종 3) 안동대도호부로 개칭하였으나 1018년 다시 상주목이 되었다. 이후로 행정 구역의 등급은 상주목, 상주군, 상주시 등으로 변화하였지만 현재도 상주로 칭하여지고 있다.
[형성 및 변천]
1018년 고려는 전국을 5도, 양계, 4도호부, 8목 체제로 정비하였고, 5도, 양계, 4도호부, 8목 체제는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존속하였다. 체제 정비 후 상주에는 목사(牧使)가 파견되었고, 상주목(尙州牧)은 7군(郡), 17현(縣), 2지사부(知事府)를 지휘·감독하는 계수관(界首官)이었다.
조선 건국 후 경주에 있던 경상도 감영(監營)을 1408년(태종 8)에 상주목(尙州牧)에 설치하였고, 경상감사가 상주목사를 겸하였다. 1413년(태종 13) 전국을 8도(道)로 나누어 행정 구역을 개편하였다. 당시 단위 간의 구역 조정으로 상주 관할에 있던 속현 일부가 충청도에 이관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보면, 15세기 초반 상주의 속현은 청리현·화령현·중모현·단밀현·산양현·공성현·영순현 등 7개 현이며, 관할하는 군현으로는 성주목, 선산도호부, 합천군·초계군·금산군, 고령현·개령현·함창현·용궁현·문경현·군위현·지례현 등을 두었다. 이후 1466년(세조 12) 진관체제(鎭管體制)를 시행하면서 상주목사는 경상우도병마절도부사(慶尙右道兵馬節度副使)를 겸하게 되었다. 1469년(예종 1)의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를 보면 상주는 계수관으로서 성주·선산·합천·초계·김산·개령·함창·문경·용궁·지례·고령 등 11개 군현을, 주진(主鎭)으로서 성주·선산·김산·개령·함창·문경·지례·고령 등 8개 군현을 관할하였다. 그러나 1600년(선조 33) 간행된 『상산지(商山誌)』에 따르면 임진왜란 이후 상주목은 진관에 소속된 군현은 변함이 없지만 행정 구역상 속현이 줄어 화령현·중모현·산양현·단밀현을 두고 있었다. 이런 행정 체제는 1895년(고종 32) 행정 구역 개편 전까지 지속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상주군은 경상도 서북쪽의 내륙에 있는 고을로서 남쪽에는 개령, 김산, 선산과 경계하고, 북쪽으로는 문경, 함창, 용궁, 예천과 경계를 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비안과 경계하고, 서쪽으로는 소백산맥이 있다.
고려의 상주목은 직할 속읍(屬邑)과 향소부곡 외에도 주읍(主邑) 단위의 지역권을 영읍(領邑)으로서 두고 있었다. 즉, 문경·용궁·개령·보령·함창·영동·해평 등 속군(屬郡) 7개, 청산·산양·화령·공성·단밀·비옥·안정·중모·호계·어모·다인·청리·가은·일선·군위·효령·부계 등 속현(屬縣) 17개, 양보·보양·단곡·생물·장천·연산·무림·하해·평안·백원·양영·관제·선은소·해상이소 등 부곡 17개소와, 주읍 단위의 영읍으로는 안동부(安東府), 경산부(京山府)가 있다. 부군현의 범위를 보면 현재의 충청도 일부와 경상도의 중서부 일대가 모두 포함되었다.
1413년(태종 13) 전국을 8도로 나누어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도 단위 간의 구역 조정으로 상주 관할에 있던 청원·옥천·보은·영동·황간 일대가 충청도에 이관되었다. 그리고 청리현·화령현·중모현·단밀현·산양현·공성현·영순현 등을 속현으로 두었으며, 성주목, 선산도호부, 합천군·초계군·금산군, 고령현·개령현·함창현·용궁현·문경현·군위현·지례현 등을 계수관으로서 관할하였다. 그러나 1466년(세조 12) 진관체제가 시행되면서 성주·선산·합천·초계·김산·개령·함창·문경·용궁·지례·고령의 계수관이자, 성주·선산·김산·개령·함창·문경·지례·고령 등의 군현을 주진으로서 관할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상주목에는 화령현·중모현·산양현·단밀현을 속현으로 두고, 진관 내에 성주목, 선산부, 김산군, 문경현·지례현·고령현·개령현·함창현을 관할하였다. 이러한 체제는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전까지 지속되었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상주목의 연혁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이후 편찬된 지리지와 읍지에서도 동일한 내용이 반복된다.
“진흥왕이 주(州)를 폐하여 상락군(上洛郡)으로 만들었다가, 신문왕이 다시 주(州)를 두고, 경덕왕이 상주(尙州)로 고쳤는데, 혜공왕이 다시 사벌주(沙伐州)로 고쳤다. 고려 태조 23년 경자에 다시 상주(尙州)로 고쳤다가, 그 뒤에 안동도독부(安東都督府)로 고쳤고, 성종 2년 계미에 처음 12목(牧)을 두었는데, 상주(尙州)가 바로 그 하나이다. 14년 을미에 12주(州) 절도사(節度使)를 두고 상주귀덕군절도사(尙州歸德軍節度使)로 일컬었다가, 현종 3년 임자에 절도사를 폐하고 다시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하였고, 5년 갑인에 상주안무사(尙州安撫使)로 삼았으며, 9년 무오년에 상주목(尙州牧)으로 정하여 8목의 하나가 되었는데, 본조에서 그대로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