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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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沙伐州 |
영어공식명칭 | Sabeol-j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외서면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방용철 |
제정 시기/일시 | 247~261년 - 사벌주 사벌국 정벌 후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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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524년 - 사벌주 군주 파견 및 상주 설치 |
폐지 시기/일시 | 557년 - 사벌주 감문주로 이전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687년 - 사벌주 주치 이전 복원 |
비정 지역 | 사벌주 -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외서면 |
성격 | 지방 행정 구역 |
관련 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고려사(高麗史)』 |
[정의]
삼국 시대 경상북도 상주시 일대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개설]
사벌주(沙伐州)는 본래 사벌국(沙伐國)[혹은 사량벌국(沙梁伐國)]이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첨해이사금(沾解尼師今)[재위 247~261] 때 석우로(昔于老)가 정벌하였으며, 이후 어느 시기에 사벌주가 되었다. 524년(신라 법흥왕 11) 처음으로 군주(軍主)를 파견하여, 상주(上州)로 삼았다. 삼국 통일 후인 757년(신라 경덕왕 16) 이름을 상주(尙州)로 고쳤다. 757년의 개편 당시 상주는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를 주치(州治)로 하여 경상북도 북부 대부분과 충청북도 영동군 및 보은군 등 10군(郡) 30현(縣)을 관장하였다.
[명칭 유래]
‘사벌(沙伐)’은 문헌에 따라 ‘사량벌(沙梁伐)’, ‘사불(沙弗)’ 혹은 ‘사화(沙火)’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공통적으로 벌판·들판이라는 지형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사벌’ 가운데 ‘벌[불]’은 벌판·들판을 의미하는 용례로 신라 권역에서 빈번하게 확인되며, 화(火)는 ‘불’의 훈차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사벌은 현재의 상주시 사벌국면 일대에 넓게 펼쳐진 낙동강 인근의 충적 평야를 일컫는 지역민들의 이름이었다.
한편, 신라의 영역 확장 과정을 살펴보면 초기의 진한 소국을 병합하였을 때 본래의 국명을 그대로 살려 둔 채 주(州)나 군(郡), 현(縣)을 붙이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사벌국이 신라에 속하게 된 이후 사벌주로 편제된 것도 같은 흐름에서 전통적인 국명을 계승한 결과로 생각된다.
[형성 및 변천]
『삼국사기』 석우로전(昔于老傳)에 따르면, 첨해이사금 때 사벌국이 백제에 귀의하므로 석우로가 정벌하였다. 다만 3세기 중엽에 신라에 완전히 편입되었다는 기사를 그대로 따르기는 어렵다. 524년 법흥왕의 지방 제도 개혁에 따라 처음으로 군주가 파견되었으며, 광역(廣域)의 주(州)인 상주(上州)의 치소(治所)가 되었다. 557년 진흥왕이 감문주(甘文州)로 주치를 옮겼다가 삼국을 통일한 후인 687년 신문왕이 다시 주를 회복시켰다. 당시 성을 새로 쌓았는데, 둘레가 1,109보에 이르렀다. 757년 경덕왕이 상주(尙州)로 개칭한 것이 이후 계속되었다. 최근까지 발굴 조사된 출토 유물의 명문을 고려하면 신라 시대 전 기간에 걸쳐 ‘사벌주’ 명칭은 계속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사벌주는 지금의 경상북도 북부 대부분과 충청북도 영동군 및 보은군 등 10개 군, 30개 현을 관장하는 광역의 주(州)에서 주치로 기능하였다. 행정 구역상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를 치소로 삼았으며, 상주시 청리면과 의성군 다인면, 상주시 외서면 세 곳은 직속 현(縣)으로 관할하였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석우로전에서 “사량벌국은 예부터 우리[신라]에게 속하여 있었는데, 갑자기 배신하여 백제에 귀의하려 하니 우로(于老)가 병력을 거느리고 가 토벌하여 멸망시켰다”는 기사가 보인다. 또한 『삼국사기』 지리지 상주(尙州) 조에서 “상주는 첨해왕 때 사벌국을 취하여 주(州)로 삼았다. 법흥왕(法興王) 11년, 양(梁)나라 보통(普通) 6년에 처음 군주(軍主)를 두고 상주(上州)로 삼았다. 진흥왕(眞興王) 18년에 주(州)를 폐지하였다. 신문왕(神文王) 7년, 당(唐)나라 수공(垂拱) 3년에 다시 주를 설치하여 성을 쌓았는데 둘레가 1,109보였다. 경덕왕(景德王) 16년에 이름을 상주(尙州)로 고쳐 지금[고려]에 이르렀다. 영현(領縣)은 셋이다. 청효현(靑驍縣)은 본래 음리화현(音里火縣)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청리현(靑理縣)이다. 다인현(多仁縣)은 본래 달이현(達巳縣)[혹은 다이(多已)]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까지 그대로 따른다. 화창현(化昌縣)은 본래 지내미지현(知乃彌知縣)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은 잘 알 수 없다”라는 연혁이 확인된다.
한편 『고려사(高麗史)』 지리지 상주목 조에는 “상주목은 본래 사벌국으로, 신라 첨해왕(沾解王) 때 차지하여 주(州)로 삼았다. 법흥왕이 상주(上州)로 고치고, 군주(軍主)를 두었다. 진흥왕 때 주를 폐지하고 상락군(上洛郡)으로 하였다”라고 하여 진흥왕 때 상락군으로 고쳤다는 유일한 기사가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