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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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上州[三國] |
영어공식명칭 | Sangju |
이칭/별칭 | 상주(尙州),상주(湘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방용철 |
[정의]
삼국 시대 경상북도 상주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 조직.
[개설]
상주(上州) 는 삼국 시대 신라가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에 치소(治所)를 두고 설치한 광역의 지방 행정 조직이다. 하나의 작은 주(州)로서 세 개의 영현을 거느리는 동시에 지금의 경상북도 서북부 일대를 관할하는 광역의 주치(州治)로 이중적인 기능을 수행하였다.
[명칭 유래]
6세기 중엽 신라는 효율적인 군사력 운용과 조세 수취 등을 목적으로 소백산맥 이남 지역을 광역의 지방 행정 조직인 상주[삼국]와 하주(下州)로 편제하였다. 일찍이 한반도 남부로 진출한 고구려 세력을 쫓아내고, 백제와 경쟁할 때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중요시되었던 상주 지역에는 당시 처음으로 지금의 군사령관 격인 군주가 파견되었다. 전통의 지명 사벌주는 이후에도 병용되었지만 경상북도 일대를 관할하여야 하는 주치로서 상주[삼국] 명칭은 국가적 차원에서 보다 중요한 의미와 활용도를 갖게 되었다. 광역의 상주[삼국]·하주 영역 중 일부는 665년(신라 문무왕 5) 분할되어 삽량주(歃良州)로 귀속되었다.
[형성 및 변천]
상주[삼국]의 치소는 557년(신라 진흥왕 18) 일선주(一善州)로 옮겼다. 그러면서 상주 지역은 사벌주 지명만을 갖게 되었다. 삼국 통일 이후 전국을 9주로 획정하는 과정에서 687년(신라 신문왕 7) 상주[삼국]가 복원되었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 상주(尙州)로 명칭이 확정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상주[삼국]는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일원을 비롯하여 의성군 다인면 일대에 해당한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 상주 조에 상주의 연혁을 정리하면서 “상주는 첨해왕(沾解王) 때 사벌국을 취하여 주(州)로 삼았다. 법흥왕 11년, 양(梁) 보통(普通) 6년[524]에 처음으로 군주를 설치하여 상주(上州)[삼국]로 삼았다. 진흥왕(眞興王) 18년 주를 폐하였다. 신문왕(神文王) 7년, 당(唐) 수공(垂拱) 3년에 다시 설치하고 성을 쌓았는데 둘레가 1,109보였다. 경덕왕 16년에 이름을 상주(尙州)로 고쳤다. 영현(領縣)은 셋이다. 청효현(靑驍縣)은 본래 음리화현(音里火縣)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청리현(靑理縣)이다. 다인현(多仁縣)은 본래 달이현(達巳縣)인데 혹은 다이(多已)라고도 한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까지 그대로 따른다. 화창현(化昌縣)은 본래 지내미지현(知乃彌知縣)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상세치 않다”라고 기록하였다. 반면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525년(신라 법흥왕 12) 2월에 대아찬(大阿飡) 이등(伊登)을 사벌주 군주로 임명하였다는 기사가 보여 사벌주 지명이 온존하였음을 방증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의해 편 원효불기(元曉不羈) 조에는 상주의 다른 이름도 전하는데, “인덕(麟德) 2년에 문무왕(文武王)이 상주[삼국]와 하주의 땅을 나누어 삽량주를 두었는데, 하주는 지금의 창녕군(昌寧郡)이고, 압량군은 본래 하주의 속현이다. 상주[삼국]는 곧 지금의 상주(尙州)로 혹은 상주(湘州)라고도 한다”라는 기사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