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7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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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尙州都會 |
영어공식명칭 | Sangju-dohoe |
이칭/별칭 | 『경상도지도 진주·상주도회(慶尙道地圖 晉州·尙州都會)』 |
분야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재두 |
[정의]
18세기 중엽 제작된 경상도 상주목 지도.
[개설]
『경상도지도 진주·상주도회(慶尙道地圖 晉州·尙州都會)』의 일부로 18세기 중엽에 제작되었다. 『상주도회(尙州都會)』에는 경상도 상주목과 경상도 함창현을 비롯한 12개 고을이 수록되어 있다.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제작 발급 경위]
18세기 중앙 정부에서는 전국 각 고을의 지리 정보를 파악하기 위하여 지도첩을 제작하였다. 『상주도회』는 경상도 성주목이 성산현(星山縣)으로 기재되어 있고, 『경주도회 좌통지도』에 1736년(영조 12)에 축조된 대구읍성이 표시된 것을 보면 1736년에서 1745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736년 경상도 성주목은 성주목 출신인 관비(官婢) 서덕(西德)이 주인을 살해한 죄로 1745년까지 10년 동안 성산현으로 강등되었다.
[형태]
『상주도회』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경주도회 좌통지도』[18개 고을], 『안동도회 좌통지도』[21개 고을],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의 『진주도회』[20개 고을] 지도첩과 함께 제작된 것이다. 지도의 크기는 세로 95㎝, 가로 73㎝이다.
[구성/내용]
『상주도회』는 상주목과 함창현 등 12개 고을의 지도와 주기(注記)를 수록하고 있다. 12개 고을은 상주(尙州), 성산현, 선산부(善山府), 금산군(金山郡), 합천군(陜川郡), 초계군(草溪郡), 개령현(開寧縣), 지례현(知禮縣), 고령현(高靈縣), 문경현(聞慶縣), 함창현(咸昌縣), 용궁현(龍宮縣)이다. 조선 전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보면 합천군과 초계군은 진주진관, 용궁현은 안동진관, 나머지 9개 고을은 상주진관 소속이었다. 원 안의 고을 이름은 붉게 칠하였고, 네모 안의 면명은 노란색, 역명은 주황색으로 표시하였으며, 향교·사직단·성황단·여제단·산천·사찰·봉수·산성·창고 등을 표시하였다. 지도 바깥에는 성곽, 민호, 군병 총수(軍兵 摠數), 전답 결수(田畓 結數), 곡물 총수(穀物 摠數), 창고에 이어, 봉수와 역 및 사방 인접한 고을과의 거리를 주기하였다.
『상주도회』 「상주」는 읍성 안에 왕산(王山)·객사·아사(衙舍)·창사(倉舍)를, 『상주도회』 「함창현」도 읍치 지역에 객사·아사·창과 함께 동지(東池)와 서지(西池)를 표시하였다. 공검지는 읍치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저수지 정도로 작게 그렸다. 두 고을 모두 서원이나 사우는 표시하지 않았다. 『상주도회』 「상주」는 성곽[둘레 3,883척, 높이 9척], 민호[2만 2576호], 군병 총수, 전답 결수, 곡물 총수, 창고[7곳]에 이어, 봉수와 역 및 사방 인접한 고을과의 거리를 주기하였다. 지도 바깥 좌우로 30개 면의 초경(初境)과 종경(終境) 거리를 주기하였다. 『상주도회』 「함창현」은 지도의 위에 성곽[무], 민호[2,430호]에 이어 군병 총수, 전답 결수, 창고[2곳]를 적은 뒤, 현내면, 하서면, 북면, 동면, 남면 순으로 거리와 사방 인접한 고을과의 거리를 주기하였다.
[의의와 평가]
『상주도회』는 조선 후기 도 단위로 일원화되기 전, 계수관·진관 등과 함께 도 아래에 몇 개의 거점 고을을 두어 지방 행정을 집행하던 방식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